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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인, 문화예술인, 야구인과 함께한 주말

24.03.14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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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은 무려 4군데 행사장 방문을 강행하며 보냈다. 첫 번째 행선지는 KBA (한국권투협회)가 주관한 안산 선부다목적 체육관에서 개최된 슈퍼 웰터급 한국 타이틀 결정전이었다.




박치순 회장 한지일 배우 장정구챔프 홍성민 회장(우측).

홍성민 SM 프로모션 대표와 동행, 목적지에 도착하니 짱구 막걸리 주갑생 대표와 김상현이사가 보인다. 이 두 분은 73년생 동갑내기 친구로 사업 파트너이다. 복싱경기가 개최되면 변함없이 경기장을 찾는 경기인 출신 ㈜ 화선 김성권 회장도 경기장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KBA(한국권투협회) 경기지회 회장을 맡고있는 김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 사내에 복싱링을 설치해 경기를 주최하면서 후원하고 있는 복싱 애호가이다. 전직 영화배우 연기자 출신의 한지일 선생도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행한 홍성민 대표에게 "전직 에로배우 한지일 선생"이라고 소개를 하자 한 선생은 "동생 나는 에로배우가 아니라 에로영화 제작자"라고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짱구막걸리 주갑생대표 김성권 회장 김상현이사(우측)

1947년 황해도 출신의 한 선생은 1970년 광고모델로 데뷔 1973년 출연한 처녀작 '바람아 구름아'란 작품이 복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어 그때부터 복싱에 관심과 사랑을 가졌다고 밝혔다.



장정구 챔프와 친분이 두터운 한 선생은 1990년 비디오 전문회사 한시네 타운을 세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성인영화 '젖소 부인 바람 났네'를 시작으로 3백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1989년 아제 아제 바리아제등에 출연한 한 선생은 그해 제27회 대종상 남우 조연상을 수상 하기도 했다.



잠시 후 4회전 선수들의 경기가 펼쳐지는 가운데 때마침 시흥시 복싱협회 제7대 윤금용 회장 취임식이 있어 장정구 챔프와 우리 일행은 경기 중간에 아쉽게 발길을 옮겨야 했다. 취임식을 마친 후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 2시간 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위치한 김미화 윤승호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로 또다시 행선지를 옮겼다.




장정구챔프와 방송인 김미화씨

그날은 두 부부가 식당을 새롭게 단장하고 개업한 날이었고 식당 냉장고에는 짱구 막걸리가 가지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필자가 김미화씨를 처음 대면한 해는 1991년 영등포에 위치한 88체육관 사무실에서였다. 당시 김미화 씨는 김한국 씨와 쓰리랑 부부 코너를 통해 큰 인기를 누렸고 1990년 여성 최초로 KBS 코메디 대축제 대상을 수상한 개그우먼이었다.



그때 88체육관에서 훈련하고 있던 홍성민은 용산공고 토목과 2학년 학생이었고 그의 1년 선배 최요삼은 용산공고 졸업반이었다. 이런 추억을 가진 우리 일행은 김씨의 식당에서 짱구 막걸리를 코다리찜을 함께 시음하며 모처럼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홍성민 SM단장과 김미화 윤승호 부부(우측)

윤승호 교수는 1977년 청룡기 야구대회에서 대구 상고가 동산고를 꺽고 우승을 할 때 이만수 포수와 배터리를 이뤄 우승을 차지한 투수 박영진과 성균관대 78학번 동창이다.



이런 인연을 빌어 필자는 이날 모임 도중 김미화 씨에게 성균관대 복싱부 창단 지원을 진지하게 건의했고 그는 여러 경로를 통해 모색하겠다고 답했다. 필자는 순간적으로 '기(氣)가 팍팍' 살아났다.



필자는 또 김미화 씨에게 곁에 있던 홍성민 SM 대표가 이번 4월에 국민대 복싱팀 창단 지도교수란 중책을 맡아 복싱 부흥에 일조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국민대학을 창설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탄생지가 바로 윤승호 교수와 같은 경기도 광주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성균관대학은 한국복싱사상 최초의 올림픽메달리스트인 한수안 선생의 모교이기에 성균관대 복싱부가 창설돼야 한다는 당위성과 명분을 설명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경에도 구하라 찾을것이요 두들겨라 열릴 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필자는 성균관대학 복싱부가 창단될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 심정으로 힘을 다해볼 생각이다.




최용만 회장 김성길 챔프 조계현 단장(우측).

다음날 필자의 죽마고우이자 전 기아타이거즈 조계현 단장이 분당 모처에서 행사가 있으니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소식을 접하고 목적지로 향했다. 그곳에서 전 한국권투 위원회(KBC) 검사부 차장이자 현재 성남 월 호텔 최용만 회장과 한국체대 5회 졸업생으로 국제대회 3관왕을 달성한 김성길 선배를 초청, 조 단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조계현은 KBO리그에서 13년간 활약 6차례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면서 126승 (92패) 을 걷어 올린 투수다. 여담이지만 유소년 시절부터 지켜본 야구선수 조계현이 복싱을 했어도 명복서 반열에 오를 정도로 피지컬이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한다.



고무줄처럼 유연한 허리와 바위처럼 묵직한 주먹 그리고 강철 체력으로 무장한 그가 만일 복싱에 입문했다면 신준섭 이해정을 비롯 박종팔 백인철과 맞대결해도 밀리지 않을 복싱 스킬을 보유했다고 확언한다.



왜냐면 필자는 중학교 때 조계현이 복싱글러브를 끼고 교내운동장에서 스파링을 펼쳤을 때 그의 두 주먹이 직선(스트레이트) 곡선(훅)의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현역시절 조계현의 역동적인 투구

조계현은 1989년 해태에 입단 4년간 연평균 160이닝을 던지면서. 초,중,고 시절부터 혹사에 혹사로 누적된 팔꿈치로 인해 투수 생명이 위협을 받은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전남 완도에 위치한 여서도에서 자신의 모교 연세대를 상징하는 독수리처럼 다각적으로 변화를 구상한다.



노쇠한 하늘의 제왕 독수리가 깃털을 뽑아내고 부리를 돌에 부수면서 새 부리가 자라고 새 깃털이 돋을 때까지 처절한 거듭나기를 하면서 제2의 삶을 살아가듯이 신촌 독수리 조계현도 에이징 커브(Aging curve)를 그릴 타이밍에 직구구속을 줄여 체력을 안배하면서 변화구 사용을 늘리는 패턴으로 환골탈태를 시도한 것이다.




전 기아타이거즈 야구단장 조계현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93년부터 17승 6패 94년 18승 5패 95년 9승 6패 방어율 1.71 1996년 16승 7패의 빼어난 성적을 올리면서 싸움닭에서 팔색조로 변신에 성공했다. 글을 쓰면서도 짜릿한 전율이 온몸에 울려 퍼질 정도로 감동적인 내용이다. 89년 해태에 입단해 우승의 한축을 차지하면서 시작된 그의 프로야구 경력은 2001년 두산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조하며 27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필자의 요청에 행사장에 참석한 전 KBC 검사부 차장을 지낸 최용만 회장인 1967년 해남 출신으로 복싱인 들 중 필자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복싱인중 한 명이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극복하고 2015년 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월 호텔을 사들이며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소리 소문없이 복싱 부흥에 일조하고 있는 복싱인이다.




국제대회 3관왕을 달성한 김성길.

성남 분당 서현동에서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는 김성길은 1962년 서울태생으로 숭덕 공고 졸업반인 1980년 제4회 김명복 박사 배 LF급 결승에서 김상찬을 꺽고 우승을 차지한 테크니션이다. 김상찬은 아마츄어 시절 장정구와 1승 1패를 기록한 호적수로 후에 대학선수권대회 최우수상을 받았다.



한국체대에 진학한 김성길은 1985년 상무에 입대해 김창석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그해 66회 전국체전에서 후에 동양 챔피언에 등극하는 최재원을 8강에서 RSC로 잡고 우승을 차지한다.



이후 빠른 동체 시력으로 각종 선발전에서 허영모와 김광선에 우세한 경기를 펼친 남성희 와 김용상, 국제대회 5관왕 서정수를 꺽은 돌풍의 주역 박대호, 제7회 핀란드 국제대회 최우수복서 주윤상, 88서울 올림픽대표 변정일 등 정상급 복서들을 차례로 꺽고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이어 1986년 12월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대회와 킹스컵대회 1987년 개최된 세계군인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국제대회 3관왕을 달성했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프로로 전향한 문성길이 빠진 밴텀급에서 허영모 변정일 서정수와 4강을 형성, 최종선발전을 대비한다.




올림픽 선발전에서 변정일을 꺽는 김성길(좌측).

김성길은 복싱 감각이 탁월했다. TV 화면에서 가끔씩 고양이와 뱀이 싸우는 장면을 자주 본다. 이때 뱀은 고양이에게 일방적으로 난타를 당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고양이의 반응속도가 0.02초로 0.07초인 뱀에 비해 3배 이상 빠르기 때문이다.



김성길은 선발전을 앞두고 올림픽팀 승선을 자신했다. 고양이처럼 민첩한 순발력을 바탕으로 무장한 김성길은 숱한 강적들을 제압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올림픽 출전을 눈앞에 둔 절호의 찬스에서 김성길은 시집가는 날 등창 난다는 옛말처럼 불의의 부상으로 출전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에게 2차례 패한 변정일이 선발전에서 허영모 서종수와 물고 물리는 대혈투 끝에 최후에 승자로 선정되어 88년 서울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다. 현장에서 허탈한 심정으로 이 경기를 지켜본 그는 복싱을 접는다.



김성길은 은퇴 후 사업에 성공해 탄탄하게 입지를 구축하다 수년 전 접고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복싱계에 컴백, 체육관을 경영하면서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온화한 성품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김성길 관장의 건승을 바란다.





조영섭 복싱전문기자는 1980년 복싱에 입문했고 현재 문성길 복싱클럽 관장을 맡고 있는 정통 복싱인이다.



1963년: 군산출생



1983년: 국가대표 상비군



1984년: 용인대 입학



1991년: 학생선수권 최우수지도자상



1998년: 서울시 복싱협회 최우수 지도자상



2018년 서울시 복싱협회 부회장



출처 : 뉴스프리존(https://www.newsfreezo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