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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A 슈퍼미들급 챔피언을 지낸 백인철이 꼽은 최대 강적은?

25.08.2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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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전(前) WBA 슈퍼미들급 백인철 챔피언이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해 인근 식당에서 오찬을 함께했다.

이날 자리에는 백인철 챔프와 오래전부터 교류해온 신동원 동원족발 대표도 함께해 분위기를 띄웠다. 평소 의협심 강한 신 대표는 과거 구리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면서 백인철, 안달호 등 복서 출신과 친분을 쌓은 무술 유단자다.

TV에도 여러 차례 출연한 그는 스턴트맨 출신으로 명성을 쌓은 방송인이기도 하다.

신동원은, 1984년 LA올림픽 국가대표와 1985년 서울월드컵(L.미들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안달호의 가교 (架橋) 역할로 필자와 자연스럽게 친구 관계로 지내고 있다.

이날 백인철은 그동안 그가 상대한 "박종팔을 포함한 18명의 국내 복서중 가장 강한 복서가 누구냐"란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얼마전 하늘의 별이 된 황준석을 꼽았다.

백인철(극동)은 1986년 10월18일 인천에서 펼쳐진 OPBF J.미들급 6차방어전 상대로 황준석(동아)과 일전을 펼쳤다.

당시 38전 37승(35KO) 1패를 기록한 백인철은 이 타이틀을 2차례에 걸쳐 통산 14차 방어에 성공한 동양의 무적함대였다. 한편 39전 36승(23KO) 3패를 기록한 도전자 황준석은 1982년 4월 황충재로부터 탈취한 동양 웰터급 타이틀을 13차 방어에 걸쳐 성공한 철권이었다.

또한 이 대결은 극동 프로모션(전호연)과 동아 프로모션 (김현치)의 자존심이 걸린 한판이기도 했다. 일전을 앞두고 애주가 백인철은 절주(節酒)가 아닌 단주(斷酒)를 하면서 세계 타이틀전 때보다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며 결전을 대비한다.

여담이지만 백인철은 상대의 강약(强弱)에 따라 음주량을 조절하는 클레버 복서였고 그의 동시대 라이벌 박종팔은 상대의 강약에 따라 훈련량을 조절하는 매우 총명한(?) 복서였다.



 4년 전 동료 복서 황충재가 동양 타이틀전에서 황준석의 함포사격에 8회에 처절하게 무너진 장면을 지켜본 백인철은 황준석의 터프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번 대결에서 힘에서 밀리면 무조건 패한다는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같은 전철(前轍)을 밟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훈련을 감행했다. 이 대결에서 백인철은 바둑의 고수답게 초반부터 실용적인 포석을 깔면서 대비한다.

그리고 5회 황소처럼 돌진하는 황준석에게 마치 돌고래가 수면에서 솟구치는 듯한 강력한 라이트 어퍼컷으로 선제 다운을 뺏어낸다.



이때 백인철은 그만 오른손이 골절(骨折)되는 부상을 입는다. 그러나 침묵의 도살자라 불리는 백인철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송곳처럼 날카로운 잽으로 들불처럼 타오르는 황준석의 거침없는 돌격을 차분하게 진화(鎭火)했다.

그렇게 12회전이 끝나고 백인철은 12회 3ㅡ0 판정승으로 방어전에 성공한다.

두명의 심판이 5점의 넉넉한 점수차로 백인철의 우세를 판정한 완승이었다. 훗날 황준석은 필자와 담화에서 정직한 패배를 인정하면서 백인철의 복싱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완벽한 복서라고 높게 평했다.

필자는 황준석(1961년생)에게 한 살 많은 백인철(1960년생)을 형님이라고 부르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니 그때 내 얼굴을 만신창이(滿身瘡痍)로 만들어 놓은 인간에게 무슨 얼어 죽을 놈의 형이야"라면서 발끈했다.

황준석은 백인철과 대결에서 받은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4개월 후에 벌어진 OPBF 웰터급 14차방어전에서 이승순에게 6회 16초 만에 백기를 들면서 타이틀을 빼앗겼다.

각설하고 백인철은 언젠가 필자와 함께 서울에서 개최된 전국체전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 했다.



그때 현장에서 현역 시절 안달호 (일우 공영)와 1승1패를 기록한 88서울올림픽(LM급) 금메달 박시헌 제주도 서귀포시청 감독, 고희룡 제주시 복싱협회 전무와 함께 담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백인철은 현역 시절 태릉선수촌을 방문해 국가대표선수들과 여러 차례 스파링을 펼쳤다고 밝혔다.

그런데 박시헌과 스파링을 할 때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신출귀몰(神出鬼沒)한 그의 빠른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해 다소 아쉬운 스파링을 벌였다고 고백했다.

가버린 세월은 말이 없고 아쉬운 추억만 남은 7·80 년대 열기 뜨겁던 프로복싱 그때 그 시절을 반추해 보면서 이번주 컬럼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