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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펼쳐진 유명우와 손오공의 라이벌전 속에 숨겨진 비화

25.08.1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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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4일(월요일) 오후 귀한 손님이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하였다. 무더위에 연일 글 쓰느라 고생한다면서 필자에게 보양식을 대접하기 위해 멀리 부평에서 올라온 원진 체육관 김용석 사범이었다.

김용석 사범은 현역 지도자 시절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최요삼 WBC 밴텀급 챔피언 변정일 MBC 신인왕 출신의 임종대 지말오 2체급에서 국내 챔피언 최완택을 조련한 트레이너다.

이분의 지도를 받은 최요삼(영등포중)은 중3 때인 1988년 5월 김명복배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 이듬해 용산공고를 거치면서 훗날 세계 챔피언에 올랐다.

변정일은 서울 신인대회 우승을 한후 안흥 공전 동국대를 거치면서 올림픽 대표와 프로복싱 세계 정상에 올라 한국 복싱 역사에 한 축을 담당했다.




이런 전력을 보유한 김용석 사범이 소속된 원진 체육관은 WBA 플라이급 챔피언 김태식을 위시하여 김병무 김장성 장관호등 WBA. WBC 양대 기구 국제심판 트리오를 배출한 명문체육관이다.

김용석 사범은 1957년 전북 고창 출신으로 1975년 상경 성동중앙체육관에서 권재우 관장의 지도를 받으면서 70년대 간판 복서 김태호 오영호 선수의 전담 스파링 파트너로 활약한 루키 (Rookie)였다.

성동중앙체육관은 김성은 김승미 이흥수등 명망 높은 국가대표 감독 트리오를 배출한 체육관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스파링 도중 김용석은 불의의 사고로 복싱을 접는다.

이후 원진 체육관에서 트레이너로 변신 굵직한 재목들을 대거 배출 지도자로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았다. 1985년 9월 8일 <문화체육관>에서 벌어진 WBA J. 플라이급 타이틀 도전자 결정전에서 유명우에게 7회 KO패 당한 손오공도 김 사범의 수제자다.

1962년 전북 임실 태생의 손오공이 복싱을 처음 시작한 체육관은 아이러니하게도 노량진에 위치한 동아체육관이었다. 당시 손오공을 지도한 트레이너가 바로 유명우 트레이너 김윤구 사범이었다.




그곳에서 6개월 동안 김 사범의 지도를 받은 손오공은 직장 문제로 양평동 에 위치한 필승체육관으로 이적 81년 10월 프로 대뷔전을 펼친다.

손오공은 제11회 MBC 신인왕전에 출전 J. 플라이급 결승에서 지말오 (원진체) 와 대결 인상적인 파이팅을 펼치며 판정승 우수신인왕에 오른다.

이때 원진 체육관 김규철 관장에 의해 손오공을 영입 김용석 사범이 손오공의 전담 트레이닝을 담당한다. 당시 손오공은 8전 8승에 KO승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후 김용석 사범의 체계적인 맞춤형 지도로 한차례 판정승을 거둔 손오공은 이후 6연속 KO퍼레이드 행진을 펼치면서 급성장한다. 특히 1982년 12월 태국에 원정 11전 11승 (8KO)를 기록한 홈링의 펫암 추아타나를 양훅으로 난타 3회 KO승한 일전은 압권이었다.

사실 태국 원정에서 승리한 한국 복서는 김기수, 홍수환, 황충재, 정희연, 김기창 등 손에 꼽을 정도의 극소수 복서들만이 승전보를 기록할 정도로 태국 링은 한국 복서들에게 무덤이었다.

1984년 7월 손오공은 세계 랭커 최문진(동아체)을 상대로 10회 판정승을 거두며 16연승을 질주한다. 이때부터 손오공은 자만심이 꿈틀거린다.

그 후 최문진에 일격을 당한 손오공은 1985년 4월 13일 경기도 오산에서 88체육관 황동용과 세계 랭킹전을 벌인다. 이대결에서 손오공은 4회 KO승을 거둔다. 황동용은 1984년 9월에 헤르만 토레스(멕시코)와 세계 랭킹전 경기에서 판정승을 거두고 세계랭킹에 진입한 복서다.

하지만 경기후 망막 부상을 당해 복싱을 접은 상태에서 세계랭킹을 손오공에 헌납(獻納)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경기를 펼친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었다.

1962년 6월 군산태생의 황동용은 아마 시절 국제대회 5관왕 서정수를 비롯 권채오 박제석 한정훈 오경묵 윤석환 성광배등 아마츄어 일당백 복서들을 차례로 제압한 복싱계 숨은 고수였다.

프로에 전향해서도 4연승을 기록한 황동용의 기량은 단연 발군이었다. 당시 88체육관에서 황동용과 스파링을 펼친 복서 중에 WBC 라이트 플라이급 장정구 챔프에게 일격을 당한 스파링을 제외하면 모든 선수들은 월명산 날다람쥐 황동용의 페이스에 철저히 농락당했다.

그런 스펙을 보유한 그가 세계랭킹에 진입하자 심영자 88 프로모션 심영자 회장은 곧바로 15만 불의 실탄을 준비한다. 그리고 1985년 2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벌어질 WBA J. 플라이급 챔피언 도미니카의 프란시스코 퀴로즈와 도전자 조이. 올리버(미국) 승자와 5월경 국내에서 대결하기로 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황동용은 뒤늦게 부상이 발견되어 손오공 전을 끝으로 안타깝게 조기에 복싱을 접어야 했다. 사실 황동용 그는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복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복싱에 특화된 숨은 진주였다.




훗날 황동용의 트레이너 이영래 사범은 만일 동용이가 부상 없이 정상적으로 활동했다면 세계 복싱 J. 플라이급 판세는 WBC 장정구 WBA 황동용 양강 구도가 형성되었을 것이라 관측했다.

황동용을 잡고 WBA 동급 4위에 랭크된 20전 19승(9KO) 1패를 기록한 손오공은 WBA 동급 7위에 포진된 17전 전승 (3KO) 를 기록한 유명우와 WBA J. 플라이급 도전자 결정전을 치룬다.

결전을 앞두고 손오공은 최완택 과 함께 충무로에 위치한 호텔에서 2주간 합숙 훈련을 한다. 유명우를 한수 아래로 판단한 손오공은 오후 훈련을 마치면 간혹 충무로 일대 주점에서 주(酒) 종목인 생맥주를 폭음하면서 하루일과를 마칠 정도로 손오공 그는 이번 승부에 자신만만했다.

드디어 1985년 9월 8일 문화체육관에서 양 선수 피할 수 없는 진검승부를 벌인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초반부터 유명우가 손오공을 마치 샌드백 두들기듯 일방적인 난타로 주도권을 잡는다.

두텁고 견고한 커버링과 고무줄처럼 유연한 몸놀림으로 무장 손오공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유명우는 찬스 포착시 기관총처럼 뿜어내는 연타에 손오공은 결국 7회에 백기를 든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부처님(유명우) 손바닥에 올라선 손오공이 마법에 걸린 듯 무기력하게 붕괴되어 버린 완벽한 패배였다.

김용석 사범은 패배의 모든 책임을 지고 복싱계를 떠난다. 한때 용산역 일대 암흑가(暗黑街)를 휘어잡았던 김용석 사범이 김규철 관장의 뜻을 존중한 것이다.

유명우는 3개월이 흐른 85년 12월 8일 챔피언 미국의 올리버를 꺾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황동용이 노렸던 세계 타이틀은 결국 돌고 돌아 유명우 챔프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김 사범은 그후 사업을 벌여 탄탄한 입지를 구축했지만 뜻하지 않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숨 고르기를 하면서 현재 장기 휴업에 들어간 상태다. 손오공은 은퇴 후에도 무절제한 생활을 일관 오래전 하늘에 별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갔다.

유명우 챔프는 기록적인 17차 방어 대업을 이룩하고 장정구 챔프의 뒤를 이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황동용은 제주도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덧 70줄에 접어든 김용석 사범은 지난날 자신을 야박하게 내친 원진 체육관 김규철 관장에 대해 실상은 정 많고 덕망 높은 관장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용석 사범과 담화를 나누면서 필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서 북소리에 나오는 한 구절 문구가 생각났다.

나이를 먹는 것 자체는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는 내 책임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진정 두려웠던 것은 어떤 시기에 달성해야만 할 것이 달성되지 못한체 그 시기가 지나가고 말았다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