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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데뷔전서 지고 WBC 페더급 정상 두 차례 오른 지인진

25.07.24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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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데뷔전서 지고 WBC 페더급 정상 두 차례 오른 지인진

기자명조영섭 복싱 전문기자




지난 어느날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프로복싱 경기를 참관한 필자는 WBC 페더급 챔피언을 지낸 지인진 관장과 SM 체육관 홍성민 대표를 현장에서 마주했다.

이 두 복서는 필자와 소중한 인연을 간직한 복서들이다.

1974년 4월 화성 태생의 홍성민 대표는 1991년 3월12일 서울 신인대회에 출전할 때 필자가 그의 트레이너였다. 1973년 7월 서울 관악구 태생의 지인진 챔프는 1991년 11월20일 그가 프로 데뷔전을 할 때 필자가 역시 그의 사범역을 맡았던 공통점이 있다.

홍성민 SM 대표는 현역 시절 지인진 챔프와 묘한 연결고리가 있는 복서다. 홍성민(용산공고)은 서울 신인 선수권 밴텀급 결승에서 이종근(와룡체)과 맞붙어 3회 RSC 승을 거뒀다. 결승까지 내리 3게임 연속 RSC 승을 거두고 우승을 차지했다.

홍성민에 패한 이종근은 1991년 6월 프로에 전향했다. 1992년 11월 개최된 신인왕전(J. 밴텀급)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면서 홍성민에 패한 쓰라린 아픔을 달랬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종근의 결승전 상대가 바로 지인진의 11월20일 프로 데뷔전 상대 박태선(강산체)이었다는 점이다. 이듬해 전국 선수권 2관왕을 달성하면서 주먹에 물이 오른 홍성민은, 7차 방어전을 앞둔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문성길과 고양시 원당 체육관에서 펼처진 3회전 공개 스파링에서 회심의 라이트 일격으로 문성길을 녹다운시키면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 장면을 현장에서 지켜본 <펀치라인> 조은상 기자가 '세계 챔피언 문성길 다운시킨 루키 홍성민'이라는 기사를 1면에 게재할 정도로 메거톤급 파괴력을 보유한 강타자였다.

그럼 이 시대 한국 프로복싱 마지막 챔피언(52회 43명)이라는 상징성을 간직한 지인진 챔프의 88 프로모션 입성 과정과 프로 데뷔전 비화(祕話), 그리고 이후에 전개되는 그의 복싱 스토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지인진은 서울 관악구 봉천동 태생이다.

지인진은 1985년 초등학교 6학년때 대원체육관 김진길 관장 문하에서 복싱을 수학했다. 지인진이 당곡중 1학년 때인 1986년, 한국체대(81학번) 학생회장 출신의 신귀항 선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체육 교사로 부임하면서 복싱부를 창설해 아마 복서로 활동한다.

1991년 10월 어느날 당곡고 신귀항 선생이 필자가 사범으로 근무하는 88체육관을 불쑥 찾았다. 목적은 대학 진학을 포기한 인진이가 프로에 전향하려고 하니 필자에게 가교(架橋) 역할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필자와 신귀항 선생은 군산체육관 선후배 관계였다. 필자는 즉시 직속상관 김철호 관장에게 소년체전 금메달과 전국체전 은메달을 획득한 그의 선수 경력을 밝히고 며칠 후 실전 스파링을 통해 전력을 테스트하기로 했다. 그리고 3일 후 88체육관에서 지인진은 공개 스파링을 벌였다.




상대는 그해 전국 선수권 최우수 선수상(MVP)을 받은 용산공고 2학년 백달근 이었다. 지인진 백달근 두 복서는 그해 전국체전 선발전 서울시 예선 결승에서 맞대결해 지인진이 3ㅡ2 판정승을 거두고 본선에 진출한 인연이 있었다.

지인진의 전력을 살펴보려고 88프로모션 심영자 회장, 김기윤 사장, 김철호 관장등 88체육관 수뇌부(首腦部)들이 참관한 가운데 스파링이 펼쳐졌다.



일진일퇴의 치열한 스파링이 끝나고 하이테크한 복싱 스킬을 유감없이 발휘한 지인진 측에 88 프로모션은 5백만원의 계약금을 전달했다.  지인진은 88프로모션 소속 선수로 등록하며 프로행의 출사표(出師表)를 던졌다.

지인진은 그해 11월 문화체육관에서 개최되는 1992년 MBC 전국 신인왕전(밴텀급)에 포커스를 맞추고 훈련을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날 필자는 인진이와 함께 문화체육관에서 개최되는 4회전 경기를 관전했다. 그런데 한 선수가 신인답지 않은 기량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이번 신인왕 전에 밴텀급에 출전하는 성남 체육관(관장 황기) 곽영철이었다.

상대를 예의주시한 필자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상대가 너무 강하다. 그러니 한 체급 내려 J. 밴텁급 으로 뛰어야겠다" 결국 인진이는 1991년 11월20일 MBC 신인왕전에 한 체급 내린 J.밴텀급으로 출전한다.

무리한 감량으로 체중 조절에 실패한 그는 경기 당일 사우나에서 체중을 감량하는 고초를 겪는다.

그리고 탈진한 상태로 링에 올랐다. 상대는 강산 체육관 박태선이었다. 이 경기에서 그는 예상대로(?) 두 차례 녹다운을 당하고 판정패를 당한다. 필자의 근시안적인 생각으로 인해 슈퍼 루키 지인진은 데뷔전부터 검은별을 달았다.

필자의 생각과 달리 곽영철은 한체급을 올려  j.페더급에 출전해 4강에서 문승훈에 판정패를 당했다. 문승훈은 결승에서 정상윤(용인대)에 6회 KO패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식자우환(識字憂患)에 의한 필자의 낭패였다.

그후 인진이는 한동안 체육관에 나오질 않았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원소속팀 대원체육관으로 이적해 옛 스승인 김진길 관장 휘하에서 새롭게 운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후 명장 김진길 관장의 지도로 그는 알렉스 박(우즈베키스탄) 등 강적들을 브레이크 없는 전차처럼 강력하게 밀어붙이며 24연승(14KO)을 질주한다.

2001년 7월 WBA 페더급 랭킹 1위에 진입한 지인진은 LA에서 WBC 페더급 타이틀에 지명 도전한다. 챔피언 멕시코 애릭 모랄레스는 같은 나라 안토니오 바레라, 파퀴아오(필리핀)와 경량급 삼국지(三國志)를 펼친 40전 전승(31 KO승)을 기록한 복서였다.



이경기에서 팽팽한 저울추처럼 균형을 이루면서 도전자 지인진은 예상을 깨고 선전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전력에서 약간 밀리면서 10회 한 차례 감점을 당한 그는 12회 판정으로 패한다.

그렇지만 인상적인 파이팅을 선보이며 지인진은 비로소 월드 클래스 복서로 진입 기량을 인정받는다.

2년후 영국 멘체스터에서 열린 WBC 페더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홈링의 마이클 브로디에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무승부를 기록한다. 지인진은 6개월 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상대와 재대결해 7회 KO승을 이끌며 삼세번의 기회를 극적으로 되살리면서 정상에 오른다.

그날이 2004년 4월11일이었다. 프로 데뷔 13년 만에 복싱 입문 20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 정상에 오르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2006년 챔피언 지인진은 일본으로 건너가 코시모드 다케시를 상대로 3차방어전을 펼쳤지만 텃세 판정에 의해 2ㅡ1로 판정패해 안타깝게 벨트를 푼다.

11개월이 지나 다케시를 누르고 챔피언에 오른 로돌프 로페스(멕시코)를 한국으로 불러들인다. 역사적인 2006년 12월17일 도전자 지인진은 군말없는 판정으로 로페스를 제압하고 투타임 WBC 페더급 챔피언에 오른다. 그러나 이 경기가 안타깝게도 지인진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만다.

지인진이 은퇴를 선언한 어느날 언론에서 Kㅡ1 진출설이 나돌았고 그 소문은 진실로 밝혀졌다. 한때 파퀴아오가 보유한 슈퍼 페더급 타이틀에 도전한다는 설도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하고 결국 현역에서 물러난다.

한국 프로복싱 사상 마지막 세계 챔피언 지인진, 그는 2008년 1월 화성시 동탄에 '지인진 복싱 스포츠 클럽'을 열어 선수양성에 박차를 가하며 지도하고 있다.

지인진 관장이 체육관을 개관한 경기도 화성은 공교롭게도 이날 함께 자리한 홍성민 SM 대표가 태어난 고장이다.




경기를 마친 후 홍성민 대표는 관악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300평에 달하는 SM체육관 10관에서 매주 토요일 11시부터 전국의 시도 복싱팀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공개 스파링을 펼친다고 밝혔다.

그리고 8월경에 추억이 묻어난 WBC 페더급 투타임 챔피언 지인진 챔프를 공식 초청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관악산(冠嶽山)은 바위가 갓(왕관)을 쓰고 있는 형상을 닮아 관악산이라 부르게 된 산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 지인진, 유명우, 김철호 그리고 아마츄어로 눈을 돌리면 1991년 킹스컵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권만득도 이곳 관악산의 정기(精氣)를 이어받아 왕관을 쓴 주인공들이다.

이 시대 프로복싱 최후의 챔피언 지인진 챔프의 건승을 바라면서 얼마전 타계한 지인진 챔프의 은사 신귀항 선생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