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마복싱의 거목 조철제 회장 퇴임식장에서 만난 사람들
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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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지난 5월 23일 금요일 오후 5시에 종각역에 위치한 파노라마 뷔페에서 원로 복싱인 조철제 원로회 명예회장의 성대한 퇴임식이 열렸다.
이날 필자는 용인대 복싱부 동문회 김영관 회장과 함께 현장으로 출발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원로 코메디언 방일수 선생이 사회를 맡으면서 진행된 입전 행사에서, 먼저 와 있던 원로가수 박일남 선생이 자신의 히트곡 <갈대의 순정>을 비롯해 <마음이 서러워도>, <정> 등 3곡의 히트곡을 숙성된 위스키처럼 고혹함을 풍기며 연달아 부르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조철제 회장과 박일남은 1990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박일남이 컴백 무대를 펼칠 때(인기 개그맨 주병진과 가수 노사연이 찬조 출연함) 조 회장이 뒤편에서 조력자로 참석해 전폭적인 후원을 하면서 응원을 해준 오랜 지인 사이다.
1939년 부산태생의 박일남은 부산 한일체육관에서 복싱을 수련하였고 훗날에는 한국체육관에서 김기수 선수(1958년 동경아시안게임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획득)의 스파링 파트너로도 활약한 전력이 있는 인기가수다.
이날 2백 명의 축하객이 모여 진행된 이번 기념식장에는 영화배우 신성일처럼 준수한 용모를 자랑했던, 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라이트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태호 선배도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1952년 서울태생의 김태호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 동반 출격한 박형춘 전(前) 한국체대 감독과 해후하며 지난날 추억을 공유하였다. 그 대회에서 김태호는 김기수에 이어 두 번째로 고교생 신분으로 아시안게임(밴텀급)에 출전한다.
대회 전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18세 소년 김태호는 최종적으로 동메달을 획득했고 32세 최고령으로 출전한 박형춘은 안타깝게 눈 부상을 당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장충초등학교 동창인 김태호는 필자에게 “췌장암에 걸려 투병 중인 상태에서 도저히 참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존경하는 성동체육관 김승미 선배의 간청에 마음을 돌려 참석했다.”고 전했다.
언젠가 한국체대 유종만 교수는 70년대 최고의 복서는 김태호 선배라고 밝혔다. 당시 중량급의 박태식, 김주석, 임재근 등 기라성 같은 역대급 복서들도 김태호 선배와 스파링을 하면 그의 화려한 테크닉에 압도당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날 참석한 김승미 감독은 90년대를 전후하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국제무대에서 4차례 종합우승과 함께 최우수 지도자상을 수상한 명장 중의 명장이다.
특히, 88 서울올림픽을 끝으로 김광선, 신준섭, 박시헌, 김동길, 문성길, 백현만 등 대표팀 주축들이 대거 퇴진할 때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1989년 7월 벌어진 제14회 북경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기적을 연출한다. 12체급에 출전한 김승미 사단의 한국대표팀은 8체급을 휩쓸면서 종합우승을 차지하였다. 이어진 제15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7체급을 석권, 대회 2연패를 달성 서울정도 600인에 당당하게 선정된 인물이 바로 김승미 감독이다.
2023년 1월 필자가 종로 구민회관 행사장에서 조철제 원로회 회장의 소개로 이진삼 전(前) 육군 참모총장을 처음 만났을 때 필자는 김승미 감독의 좌석을 이진삼 장군과 나란히 배치((配置)했다.
이는 필자가 김승미 감독이 군대조직에 비유하자면 육군 참모총장 같은 위치에 올라선 인물임을 상징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현장에서 “명예는 상관에게,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란 철학으로 무장한 이진삼 전(前) 육군참모총장을 마주하면서 1991년 12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는 지난날의 장면을 반추해 보았다.
그러면서 문득 레전드 군인 이진삼 장군은 채명신 사령관과 비견되는 참군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와 조철제 회장의 인연은 이진삼 장군이 육군 중위 시절 청량리에서 근무할 때부터 시작됐고 그렇게 시작된 두 분의 인연은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이날 행사장에는 한국복싱을 상징하는 복싱 대통령 장정구, 복싱 사상 최초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 백인철, 동양 웰터급 황충재 챔피언. 4전 5기 신화를 창출한 홍수환 챔프도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1981년 5월 홍수환 챔프가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김철호의 트레이닝을 맡던 시절, 장정구 챔프는 이일복 선수와 함께 홍수환 휘하에서 훈련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WBA J.라이트급 1위를 기록한 이일복은 “홍수환 선배는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들(김철호, 장정구, 이일복)을 세심하게 지도해 기량을 한 단계씩 끌어올린 장본인”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장에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대표 출신의 장흥민이 멀리 경북 안동에서 열차를 타고 아내와 함께 참석해 무려 45년 만에 장정구 챔프와 해후하는 감격을 누리기도 하였다.
두 복서의 인연은 장정구가 1978년 전국체전 부산 대표(일반부)로 선발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부산복싱협회는 돌연 장정구를 제외시키고 부산 대표로 장흥민을 선발시킨다.
장정구는 분통이 터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묘한 인연을 간직한 두 복서는 모스크바 올림픽 2차 선발전(전주)이 벌어진 1979년 12월 25일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맞붙었다.
라이트 플라이급 4강전이었던 이 대결에서 당시 한국체대 2학년 장흥민은 장정구에게 근소한 차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결과에 크게 상심한 장정구는 결국 서울로 올라와 이듬해 신인왕전을 통해 프로에 전향한다. 장정구가 프로에 전향하는 데 장흥민이 결정적인 트리거(Trigger)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한국 프로복싱계에서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위대한(Great) 챔피언 장정구의 탄생에 장흥민이 큰 역할을 한 셈이다.
홍수환 챔프(왼쪽부터), 조철제회장,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33년간 재직한 교직 생활(경북체고. 안동공고)을 접고 3년 전 퇴직한 장흥민은 78년 방콕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오인석에게 패하자 조철제 회장이 따스한 격려를 해준 기억이 새롭다고 밝혔다.
장흥민은 한영고 재학시절 그에게 3연패를 당한 서울체고 김철규 선수가 찾아와 한국체대 진학을 위해 대회를 포기해 줄 것을 간청하자 그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행한 미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결국 장흥민 김철규 두 복서는 1978년 한국체대 2기생으로 함께 입학하였다.
해남에서 상경, 청량리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복싱 4대 기구(WBA.WBC.IBF.WBO) 국제심판 박동안 회장은 홍수환·옥희 커플에 이어 복서·가수 커플 2호로 탄생한 주인공이다.
1949년 해남 출신의 박동안 회장은 홍수환 챔프 못지않은 준수한 노래 실력을 보유한 복서 출신이다. 특히 팝송은 아내이자 70년대 톱가수 이숙 님을 능가한다는 후문이다.
또 이번 기념식장에는 김영관 용인대 복싱 동문회 회장, 이정호 국민대 교수, 그리고 임동술 동보 ENC 전무가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1967년 충남 태안태생의 김영관 회장은 고교 시절 동료 복서(인천 금강체) 서정수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복싱 스펙이 출중한 복서였고, 용인대학에 진학 후 89년도 대학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복서 겸 파이터였다.
88체육관에서 이영래 사범의 지도로 복싱을 수학한 이정호 현 국민대학 체육학부 총괄 교수는 지난해 국민대학 복싱부를 전격 창단하면서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두 분은 홍성민 SM 대표와의 친분으로 기념식장에 흔쾌히 참석했다.
필자의 초청으로 이번 행사장에 참석한 임동술은 1960년 익산 태생으로 용인대학 재학시절 은퇴 후 천호동에서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던 정순현 챔프와 인연을 맺은 전형적인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였다.
그때 그 시절 그는 천호동 일대와 강남 그리고 장안동 일대를 평정 <밤의 황태자>로 불렸다. 이날 용인대 선배이자 대한 프로레슬링협회 김수홍 회장과 동반 참석한 임동술은 전북체고 재학시절 레슬링 선수로 활약하면서 헤비급에서 전국체전을 비롯해 KBS 양정모배 전국 종별선수권을 휩쓸면서 3관왕을 달성한 체육인이다.
5시에 행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행사가 끝난 8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저녁 식사를 할 정도로 정신없이 취재에 몰입했다.
이번 행사는 조철제 회장의 구순 잔치란 타이틀로 기념식이 진행되었지만 엄밀하고 냉정하게 말하면 70년대 아마복싱을 쥐락펴락한 대한 복싱협회 전무이자 원로회 조철제 회장의 퇴임식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던 것 같다.
퇴임식이 끝나고 김영관 회장과 함께 귀가하면서 문득 만해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 한 구절이 스쳐 갔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란 구절이 그것인데, 그 대목이 오늘따라 가슴에 깊이 스며들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걸출한 인물들이 많아 필자는 최소한 3회에 걸쳐 조철제 회장 퇴임식을 시리즈로 연재할 생각이다.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이번 주 스포츠 칼럼을 마무리한다.
이날 필자는 용인대 복싱부 동문회 김영관 회장과 함께 현장으로 출발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원로 코메디언 방일수 선생이 사회를 맡으면서 진행된 입전 행사에서, 먼저 와 있던 원로가수 박일남 선생이 자신의 히트곡 <갈대의 순정>을 비롯해 <마음이 서러워도>, <정> 등 3곡의 히트곡을 숙성된 위스키처럼 고혹함을 풍기며 연달아 부르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조철제 회장과 박일남은 1990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박일남이 컴백 무대를 펼칠 때(인기 개그맨 주병진과 가수 노사연이 찬조 출연함) 조 회장이 뒤편에서 조력자로 참석해 전폭적인 후원을 하면서 응원을 해준 오랜 지인 사이다.
1939년 부산태생의 박일남은 부산 한일체육관에서 복싱을 수련하였고 훗날에는 한국체육관에서 김기수 선수(1958년 동경아시안게임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획득)의 스파링 파트너로도 활약한 전력이 있는 인기가수다.
이날 2백 명의 축하객이 모여 진행된 이번 기념식장에는 영화배우 신성일처럼 준수한 용모를 자랑했던, 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라이트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김태호 선배도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1952년 서울태생의 김태호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 동반 출격한 박형춘 전(前) 한국체대 감독과 해후하며 지난날 추억을 공유하였다. 그 대회에서 김태호는 김기수에 이어 두 번째로 고교생 신분으로 아시안게임(밴텀급)에 출전한다.
대회 전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18세 소년 김태호는 최종적으로 동메달을 획득했고 32세 최고령으로 출전한 박형춘은 안타깝게 눈 부상을 당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과 장충초등학교 동창인 김태호는 필자에게 “췌장암에 걸려 투병 중인 상태에서 도저히 참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존경하는 성동체육관 김승미 선배의 간청에 마음을 돌려 참석했다.”고 전했다.
언젠가 한국체대 유종만 교수는 70년대 최고의 복서는 김태호 선배라고 밝혔다. 당시 중량급의 박태식, 김주석, 임재근 등 기라성 같은 역대급 복서들도 김태호 선배와 스파링을 하면 그의 화려한 테크닉에 압도당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날 참석한 김승미 감독은 90년대를 전후하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국제무대에서 4차례 종합우승과 함께 최우수 지도자상을 수상한 명장 중의 명장이다.
특히, 88 서울올림픽을 끝으로 김광선, 신준섭, 박시헌, 김동길, 문성길, 백현만 등 대표팀 주축들이 대거 퇴진할 때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그리고 1989년 7월 벌어진 제14회 북경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기적을 연출한다. 12체급에 출전한 김승미 사단의 한국대표팀은 8체급을 휩쓸면서 종합우승을 차지하였다. 이어진 제15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7체급을 석권, 대회 2연패를 달성 서울정도 600인에 당당하게 선정된 인물이 바로 김승미 감독이다.
2023년 1월 필자가 종로 구민회관 행사장에서 조철제 원로회 회장의 소개로 이진삼 전(前) 육군 참모총장을 처음 만났을 때 필자는 김승미 감독의 좌석을 이진삼 장군과 나란히 배치((配置)했다.
이는 필자가 김승미 감독이 군대조직에 비유하자면 육군 참모총장 같은 위치에 올라선 인물임을 상징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현장에서 “명예는 상관에게,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란 철학으로 무장한 이진삼 전(前) 육군참모총장을 마주하면서 1991년 12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는 지난날의 장면을 반추해 보았다.
그러면서 문득 레전드 군인 이진삼 장군은 채명신 사령관과 비견되는 참군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와 조철제 회장의 인연은 이진삼 장군이 육군 중위 시절 청량리에서 근무할 때부터 시작됐고 그렇게 시작된 두 분의 인연은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이날 행사장에는 한국복싱을 상징하는 복싱 대통령 장정구, 복싱 사상 최초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WBA 슈퍼 미들급 챔피언 백인철, 동양 웰터급 황충재 챔피언. 4전 5기 신화를 창출한 홍수환 챔프도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었다.
1981년 5월 홍수환 챔프가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김철호의 트레이닝을 맡던 시절, 장정구 챔프는 이일복 선수와 함께 홍수환 휘하에서 훈련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WBA J.라이트급 1위를 기록한 이일복은 “홍수환 선배는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들(김철호, 장정구, 이일복)을 세심하게 지도해 기량을 한 단계씩 끌어올린 장본인”이라고 밝혔다.
이날 행사장에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대표 출신의 장흥민이 멀리 경북 안동에서 열차를 타고 아내와 함께 참석해 무려 45년 만에 장정구 챔프와 해후하는 감격을 누리기도 하였다.
두 복서의 인연은 장정구가 1978년 전국체전 부산 대표(일반부)로 선발되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부산복싱협회는 돌연 장정구를 제외시키고 부산 대표로 장흥민을 선발시킨다.
장정구는 분통이 터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묘한 인연을 간직한 두 복서는 모스크바 올림픽 2차 선발전(전주)이 벌어진 1979년 12월 25일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맞붙었다.
라이트 플라이급 4강전이었던 이 대결에서 당시 한국체대 2학년 장흥민은 장정구에게 근소한 차로 판정승을 거두었다.
결과에 크게 상심한 장정구는 결국 서울로 올라와 이듬해 신인왕전을 통해 프로에 전향한다. 장정구가 프로에 전향하는 데 장흥민이 결정적인 트리거(Trigger)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한국 프로복싱계에서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위대한(Great) 챔피언 장정구의 탄생에 장흥민이 큰 역할을 한 셈이다.
홍수환 챔프(왼쪽부터), 조철제회장,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
33년간 재직한 교직 생활(경북체고. 안동공고)을 접고 3년 전 퇴직한 장흥민은 78년 방콕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오인석에게 패하자 조철제 회장이 따스한 격려를 해준 기억이 새롭다고 밝혔다.
장흥민은 한영고 재학시절 그에게 3연패를 당한 서울체고 김철규 선수가 찾아와 한국체대 진학을 위해 대회를 포기해 줄 것을 간청하자 그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행한 미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결국 장흥민 김철규 두 복서는 1978년 한국체대 2기생으로 함께 입학하였다.
해남에서 상경, 청량리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복싱 4대 기구(WBA.WBC.IBF.WBO) 국제심판 박동안 회장은 홍수환·옥희 커플에 이어 복서·가수 커플 2호로 탄생한 주인공이다.
1949년 해남 출신의 박동안 회장은 홍수환 챔프 못지않은 준수한 노래 실력을 보유한 복서 출신이다. 특히 팝송은 아내이자 70년대 톱가수 이숙 님을 능가한다는 후문이다.
또 이번 기념식장에는 김영관 용인대 복싱 동문회 회장, 이정호 국민대 교수, 그리고 임동술 동보 ENC 전무가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1967년 충남 태안태생의 김영관 회장은 고교 시절 동료 복서(인천 금강체) 서정수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복싱 스펙이 출중한 복서였고, 용인대학에 진학 후 89년도 대학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복서 겸 파이터였다.
88체육관에서 이영래 사범의 지도로 복싱을 수학한 이정호 현 국민대학 체육학부 총괄 교수는 지난해 국민대학 복싱부를 전격 창단하면서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두 분은 홍성민 SM 대표와의 친분으로 기념식장에 흔쾌히 참석했다.
필자의 초청으로 이번 행사장에 참석한 임동술은 1960년 익산 태생으로 용인대학 재학시절 은퇴 후 천호동에서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던 정순현 챔프와 인연을 맺은 전형적인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였다.
그때 그 시절 그는 천호동 일대와 강남 그리고 장안동 일대를 평정 <밤의 황태자>로 불렸다. 이날 용인대 선배이자 대한 프로레슬링협회 김수홍 회장과 동반 참석한 임동술은 전북체고 재학시절 레슬링 선수로 활약하면서 헤비급에서 전국체전을 비롯해 KBS 양정모배 전국 종별선수권을 휩쓸면서 3관왕을 달성한 체육인이다.
5시에 행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행사가 끝난 8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저녁 식사를 할 정도로 정신없이 취재에 몰입했다.
이번 행사는 조철제 회장의 구순 잔치란 타이틀로 기념식이 진행되었지만 엄밀하고 냉정하게 말하면 70년대 아마복싱을 쥐락펴락한 대한 복싱협회 전무이자 원로회 조철제 회장의 퇴임식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던 것 같다.
퇴임식이 끝나고 김영관 회장과 함께 귀가하면서 문득 만해 한용운 선생의 「님의 침묵」 한 구절이 스쳐 갔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란 구절이 그것인데, 그 대목이 오늘따라 가슴에 깊이 스며들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걸출한 인물들이 많아 필자는 최소한 3회에 걸쳐 조철제 회장 퇴임식을 시리즈로 연재할 생각이다.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고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이번 주 스포츠 칼럼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