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복싱인, 김재한 선생의 빛나는 발자취⑤
2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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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올림픽 메달리스트 이재혁을 탄생시킨 스승의 열정
메달은 일시적이지만, 가르치는 인생의 교훈은 영원하다
청양 체육관의 전설적인 만남
지난 일요일 필자는 2주 연속 2025 종별선수권 대회가 펼쳐지는 청양 체육관을 찾았다. 체육관을 찾아가는 필자의 마음은 언제나 설렘을 품고 고향 집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왜냐면 지난날 용산공고와 서울체고에 근무하면서 사각의 링에서 물고 물리는 경쟁 속에 전우애로 뭉친 동료 선. 후배를 만나 추억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서 만난 수많은 복싱 관계자분 중 이번 주 <스포츠 칼럼 주인공으로 당첨된 인물>은 대한 복싱협회 부 심판위원장 자격으로 이 대회를 참관한 김재한 전(前) 청도 매전중 교장선생이다. 1952년 경북 청송 출신의 김재한은 1968년 대구 성광고 재학시절 국일 체육관 김달원 관장에게 복싱을 익힌다.
선수에서 명장으로, 그리고 교육자로
프로복싱 국제심판을 겸직한 김달원 관장은 현역 시절 박희도 석종구 등과 함께 대구 복싱의 트로이카를 형성한 분이다. 한편, 일반입시를 거쳐 1972년 영남대학에 진학한 그는 1973년 제4회 전국 학생 신인 대학부 라이트급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어진 1974년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지만 크게 두각을 나타낸 복서는 아니었다. 1976년 영남대학을 졸업하고 경희대 대학원을 마친 김재한은 1978년 문창고에 교사로 부임한다. 그리고 곧바로 복싱부를 창단 첫 전국대회를 우승하면서 그의 복싱 인생 서막이 활짝 열렸다. 2년 후 안동공고 복싱부를 또다시 창단 웰터급의 김웅희(용인대)를 청소년 대표로 발탁시키고 김웅 현 김기용 김정목 등 5체급에서 경북 대표 선수로 선발시켜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는다.
섬마을까지 복싱의 불을 밝히다
1981년 김재한 선생은 경북 체육 중고 복싱 감독으로 옮기면서 지도자로 화려한 불꽃을 태운다. 이곳에서 1986년 제4회 세계 청소년 대회 국가대표 성 만기. 89년 서울컵 우승(MVP)과 1991년 호주 세계 선수권 은메달 박덕규. 89년 아시아 선수권 90년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금메달 박세종. 89년 서울컵 은메달과 90년 북경아시안게임 국가대표 김시영. 88 서울 올림픽 동메달 이재혁. 88년 서울컵 라이트 헤비급 국가대표 최재훈. 1990년 킹스컵.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1991년 호주 세계 선수권 미들급 국가대표 김보안, 1991년 4월 킹스컵대회 라이트 헤비급 동메달 진정재 등을 10명의 국가대표 선수가 탄생 한국 아마복싱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이는 김재한 감독의 상황에 맞는 창의적인 전략과 전술을 선수들이 잘 흡수 기적의 퍼포먼스를 연출하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특히 김재한 감독 최대의 작품 이재혁은 88 서울 올림픽 본선 1차전에서 뒷날 WBC 라이트급 챔피언 미구엘 곤잘레스 (멕시코)를 3차전에선 91년 세계 선수권자 키리코르프 (불가리아)를 각각 판정으로 잡고 메달권에 진입했다. 이 같은 공로로 김재한 선생은 지난 88년 서울 올림픽 체육부 장관 표창장. 90년 경북 교육상과 경북 최고 체육 지도자상을 한꺼번에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후 1991년에는 울릉 종고로 근무지를 지원 복싱부를 창단한 그는 울릉군 사상 최초로 섬 소년 이정렬 김시현을 경북 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시켜 갈채를 받았다.
그는 복싱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을 고취(鼓吹)시키고자 1993년 울릉군 유지들의 도움으로 박덕규를 비롯해 10여 명 대표급 선수들을 초청 시범경기를 주최하였다. 1996년에 장신중에 복싱부를 창단 제55회 전국 소년체전에 5명이 출전 금메달 1 은메달 2 동메달 2개 등 출전선수 전원에 메달을 획득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마지막까지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을 불태운 인물이 바로 김재한 선생이다. 특히 미들급 김동현이 4연속 RSC 승을 거두면서 마지막 우승에 방점을 찍었다. 2013년에는 교장으로 국제 복싱협회(AIBA)가 실시하는 국제심판 시험에 합격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70평생 복싱 외길을 걷는 의인(義人)
2014년 지역 복싱계 발전에 크게 공헌한 매천중학교 김재한 교장은 그해 8월 역사적인 정년 퇴임식을 했다. 이날 퇴임식에서 WBA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 홍수환(인천체대) 이흥수(용인대) 전 상무 감독 포함제자 학부모 교육계 관계자 등 2백 명이 참석 그의 정년퇴임을 축하했다. 김재한 선생은 37년간 체육 교사로 재직하며 경북 지역에서 6개 중·고등학교에 복싱부를 창단 지역 복싱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2017년 5월 김재한 선생은 국제 복싱(AIBA) 심판위원으로 변신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열리는 국제 복싱대회에 참관하기 위해 출국 변함없는 복싱인의 열정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여담이지만 1952년 청송 출신의 김재한 선생과 1954년 경북 의성 출신의 이흥수 감독은 현대판 절친 콤비 오성과 한음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오성(이항복)과 한음(이덕형)은 조선 선조 때 명신으로 이항복은 이덕형보다 5살 많았다. 하지만 격의 없이 소꿉친구로 지내면서 많은 일화를 기록으로 남겼다. 김재한 선생도 2살 어린 이흥수 감독을 허물없이 친한 벗을 뜻하는 막역지우(莫逆之友)로 삼고 상호 간에 깊은 우정을 보여주었다. 고희(古稀)를 훌쩍 뛰어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평생 복싱 외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복싱의 재건을 위해 분투하는 이 시대 진정한 복싱계 의인(義人) 김재한 선생의 무궁한 건승을 바란다. 김재한 선생! 그의 인생은 "링 위에 새겨진 교육 철학" 그 자체다.
메달은 일시적이지만, 가르치는 인생의 교훈은 영원하다
청양 체육관의 전설적인 만남
지난 일요일 필자는 2주 연속 2025 종별선수권 대회가 펼쳐지는 청양 체육관을 찾았다. 체육관을 찾아가는 필자의 마음은 언제나 설렘을 품고 고향 집을 방문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왜냐면 지난날 용산공고와 서울체고에 근무하면서 사각의 링에서 물고 물리는 경쟁 속에 전우애로 뭉친 동료 선. 후배를 만나 추억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장에서 만난 수많은 복싱 관계자분 중 이번 주 <스포츠 칼럼 주인공으로 당첨된 인물>은 대한 복싱협회 부 심판위원장 자격으로 이 대회를 참관한 김재한 전(前) 청도 매전중 교장선생이다. 1952년 경북 청송 출신의 김재한은 1968년 대구 성광고 재학시절 국일 체육관 김달원 관장에게 복싱을 익힌다.
선수에서 명장으로, 그리고 교육자로
프로복싱 국제심판을 겸직한 김달원 관장은 현역 시절 박희도 석종구 등과 함께 대구 복싱의 트로이카를 형성한 분이다. 한편, 일반입시를 거쳐 1972년 영남대학에 진학한 그는 1973년 제4회 전국 학생 신인 대학부 라이트급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이어진 1974년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지만 크게 두각을 나타낸 복서는 아니었다. 1976년 영남대학을 졸업하고 경희대 대학원을 마친 김재한은 1978년 문창고에 교사로 부임한다. 그리고 곧바로 복싱부를 창단 첫 전국대회를 우승하면서 그의 복싱 인생 서막이 활짝 열렸다. 2년 후 안동공고 복싱부를 또다시 창단 웰터급의 김웅희(용인대)를 청소년 대표로 발탁시키고 김웅 현 김기용 김정목 등 5체급에서 경북 대표 선수로 선발시켜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는다.
섬마을까지 복싱의 불을 밝히다
1981년 김재한 선생은 경북 체육 중고 복싱 감독으로 옮기면서 지도자로 화려한 불꽃을 태운다. 이곳에서 1986년 제4회 세계 청소년 대회 국가대표 성 만기. 89년 서울컵 우승(MVP)과 1991년 호주 세계 선수권 은메달 박덕규. 89년 아시아 선수권 90년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금메달 박세종. 89년 서울컵 은메달과 90년 북경아시안게임 국가대표 김시영. 88 서울 올림픽 동메달 이재혁. 88년 서울컵 라이트 헤비급 국가대표 최재훈. 1990년 킹스컵. 인도네시아 대통령배 1991년 호주 세계 선수권 미들급 국가대표 김보안, 1991년 4월 킹스컵대회 라이트 헤비급 동메달 진정재 등을 10명의 국가대표 선수가 탄생 한국 아마복싱계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이는 김재한 감독의 상황에 맞는 창의적인 전략과 전술을 선수들이 잘 흡수 기적의 퍼포먼스를 연출하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특히 김재한 감독 최대의 작품 이재혁은 88 서울 올림픽 본선 1차전에서 뒷날 WBC 라이트급 챔피언 미구엘 곤잘레스 (멕시코)를 3차전에선 91년 세계 선수권자 키리코르프 (불가리아)를 각각 판정으로 잡고 메달권에 진입했다. 이 같은 공로로 김재한 선생은 지난 88년 서울 올림픽 체육부 장관 표창장. 90년 경북 교육상과 경북 최고 체육 지도자상을 한꺼번에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후 1991년에는 울릉 종고로 근무지를 지원 복싱부를 창단한 그는 울릉군 사상 최초로 섬 소년 이정렬 김시현을 경북 대표로 전국체전에 출전시켜 갈채를 받았다.
그는 복싱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을 고취(鼓吹)시키고자 1993년 울릉군 유지들의 도움으로 박덕규를 비롯해 10여 명 대표급 선수들을 초청 시범경기를 주최하였다. 1996년에 장신중에 복싱부를 창단 제55회 전국 소년체전에 5명이 출전 금메달 1 은메달 2 동메달 2개 등 출전선수 전원에 메달을 획득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마지막까지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을 불태운 인물이 바로 김재한 선생이다. 특히 미들급 김동현이 4연속 RSC 승을 거두면서 마지막 우승에 방점을 찍었다. 2013년에는 교장으로 국제 복싱협회(AIBA)가 실시하는 국제심판 시험에 합격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70평생 복싱 외길을 걷는 의인(義人)
2014년 지역 복싱계 발전에 크게 공헌한 매천중학교 김재한 교장은 그해 8월 역사적인 정년 퇴임식을 했다. 이날 퇴임식에서 WBA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 홍수환(인천체대) 이흥수(용인대) 전 상무 감독 포함제자 학부모 교육계 관계자 등 2백 명이 참석 그의 정년퇴임을 축하했다. 김재한 선생은 37년간 체육 교사로 재직하며 경북 지역에서 6개 중·고등학교에 복싱부를 창단 지역 복싱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2017년 5월 김재한 선생은 국제 복싱(AIBA) 심판위원으로 변신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열리는 국제 복싱대회에 참관하기 위해 출국 변함없는 복싱인의 열정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여담이지만 1952년 청송 출신의 김재한 선생과 1954년 경북 의성 출신의 이흥수 감독은 현대판 절친 콤비 오성과 한음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오성(이항복)과 한음(이덕형)은 조선 선조 때 명신으로 이항복은 이덕형보다 5살 많았다. 하지만 격의 없이 소꿉친구로 지내면서 많은 일화를 기록으로 남겼다. 김재한 선생도 2살 어린 이흥수 감독을 허물없이 친한 벗을 뜻하는 막역지우(莫逆之友)로 삼고 상호 간에 깊은 우정을 보여주었다. 고희(古稀)를 훌쩍 뛰어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평생 복싱 외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깊은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복싱의 재건을 위해 분투하는 이 시대 진정한 복싱계 의인(義人) 김재한 선생의 무궁한 건승을 바란다. 김재한 선생! 그의 인생은 "링 위에 새겨진 교육 철학"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