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前職)복싱 국가대표 출신들 진천 선수촌 전격 방문
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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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기자명조영섭 복싱 전문기자
조영섭의 복싱 열전
1989년부터 90년대에 결 쳐 대한민국 복싱대표팀을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국제대회 종합우승 4차례나 이끌었던 김승미 사단의 복싱 국가대표 선수들이 주류(主流)를 형성 지난 9월15일 2026년 나고야(일본) 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둔 복싱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격려금을 전달하기 위해 진천 선수촌을 전격 방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번 격려금 전달행사(이벤트)는 1992년 바로 셀로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홍성식(현 상무 복싱 전우회 회장)의 치밀한 준비와 기획에 뜻을 같이한 12명의 전 국가대표 출신들이 동참하면서 야심 차게 추진된 행사였다.
이들은 현장에 도착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필승과 선전 그리고 사기진작을 고취(鼓吹)시키기 위하여 격려금 약 1천400만을 선수단에 전달 후방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날 진천 선수촌 방문에는 전 복싱 국가대표 출신 선후배 모임 회 채성배 회장을 비롯 안정현, 마종효, 최기수, 김성주, 김명현, 정연수, 이강수, 이영록, 유지훈, 구재강, 홍성식 등 전직(前職) 복싱 국가대표 출신 12명이 대거 집결했다.
한국 아마복싱은 1954년 제2회 마닐라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박금현(밴텀급)이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강준호를 꺾고 본선에 진출 국내 복싱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획득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꾸준히 성장 해온 아마복싱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는 북한(금메달 3개)의 거센 돌풍에 휘말리면서도 12체급 체급에서 7체급을 석권 북한을 제치고 종합 3위를 차지하는데 견인차 (牽引車) 역할을 했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6년 에는 김유현을 비롯한 12체급 전 체급에서 금메달을 획득 국내 복싱사상 최초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면서 한국 아마복싱 대표팀은 최절정기에 올랐다.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을 끝으로 김승연 복싱협회 회장의 퇴진과 맞물린 한국대표팀은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5개 1994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했다.
그러던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최초로 노골드에 그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물론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후보였던 신은철이 준결승에서 홈 텃세에 밀려 탈락했지만 이보다는 복싱 인구의 감소와 맞물려 선수층이 헐거워진 이유도 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후 한국 아마복싱은 아시아 맹주(盟主) 자리에서 스멀스멀 멀어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번 행사는 전 복싱 국가대표팀 선배들이 의기투합 이런 훈훈한 이벤트 행사를 주최한 것은 2026년 이번 나고야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이번 대회를 시금석(試金石)으로 삼아 반전(反轉)의 카드를 마련하기 위한 선배 복서들의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이 자리에는 항상 정의롭고 투명한 행정으로 진천 선수촌을 힘차게 이끄는 탁구 국가대표 출신의 김택수 촌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1970년 전남태생의 김택수 촌장은 1989년 태국에서 열린 유라시아 탁구대회에 출전할 때 세계랭킹 42위였다. 그런 그가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5위인 폴란드 선수를. 결승에서 88서울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한 김기택을 각각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96년에는 96 올스타 서킷 대만대회에서 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공링후이(중국) 를 3ㅡ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바로 김택수 촌장이다.
우리 대표선수단도 이점 명심하고 최후에 일각(一刻)까지 선전 분투하길 바란다. 한편 이번 대회 출전하는 자랑스런 복싱 국가대표팀 명단은 다음과 같다.
남자팀은 신재용 (국군체육부대) 55Kg급. 장동환 (한국체육대회) 60Kg급. 김준수(보령시청) 70Kg급. 김민성(한국체대) 80Kg급. 김기채(수원시청) 90Kg급. 주태웅(화순군청) 90Kg 이상 급등 6체급에서 출전한다.
여자선수단으로 눈을 돌리면 박초롱 51Kg급. 양이영(울산광역시) 54Kg급. 오연지 (울산광역시청) 60Kg급. 선수진(성남시청) 65Kg급. 성수연(원주시청) 75Kg급 5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전(前) 복싱 국가대표팀 출신 선후배 모임 회장이며 1991년 호주 세계 선수권 복싱대회 동메달리스트이자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채성배 회장은 이번 행사에 격려금 오백만원을 쾌척한 김명현 후배가 적극 참여하면서 이번 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둔 대표팀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고 밝혔다.
채 회장은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후배 복서 김명현은 대학 시절 평소에 막역하게 지냈던 모 선배 복서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생계에 위협을 받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선배를 위해 경기도 김포시 본 공장 인근에 직접 구내식당을 차려준 일화는 복싱계의 보기 드문 미담을 제공한 복싱계 의인(義人)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필자가 기억하는 1974년 서울 태생의 김명현은 리라 공고 시절 1992년 제73회 전국체전 고등부(라이트급)에서 서울팀에서 유일한 금메달을 획득한 왼손잡이 복서였다.
1993년 서울. 시립대에 진학 그해 12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차 선발전(LW급)에서 4강에서 정수연(상무) 결승에서 김호철(리라공고)을 차례로 꺾고 선수촌에 입성한 국가대표 출신이다.
그는 필자에게 용산공고 최요삼 형이 리라공고 선수에게 억울하게 패한 경기를 서두에 던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용산공고 최준욱과 벡달근이 리라공고 선수에게 사전 작업에 의해 3연패 한 장면이 스쳐갔다. 역(逆)으로 임계룡이 김창현을 홍성민이 문철웅을 이긴 장면도 떠올랐다. 세월이 흐르면 패배의 아픔도 승리의 기쁨도 모두 추억 이란 이름으로 재생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다.
이날 격려금 전달행사 현장에는 베드민턴계의 세계적인 슈퍼스타 안세영의 부친 안정현도 함께하면서 후배들을 격려했다.
1969년 전남 나주 출신의 안정현은 1995년 6월 제4회 서울컵 복싱대회에서 SH 급으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한 국가대표 출신의 복싱선수다. 끝으로 김승미 전(前) 대표팀 감독은 이번 아시안게임 메달 전망에 대해 복싱은 변수가 많은 종목이라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2018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부 60Kg급 오연지 선수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메달권에 가장 근접한 선수라고 관망했다. 컬럼을 마무리할 무렵 전파를 타고 가수 심수봉의 무궁화노래 가사가 가슴을 적시는 순간 마음이 울컥해진다. 포기하면 안된다. 눈물 없인피지 않는다. 의지다 하면 된다. 나의 뒤를 부탁한다. 애독자 여러분들 풍요로운 추석 명절 맞이하세요.
조영섭의 복싱 열전
1989년부터 90년대에 결 쳐 대한민국 복싱대표팀을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국제대회 종합우승 4차례나 이끌었던 김승미 사단의 복싱 국가대표 선수들이 주류(主流)를 형성 지난 9월15일 2026년 나고야(일본) 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둔 복싱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격려금을 전달하기 위해 진천 선수촌을 전격 방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번 격려금 전달행사(이벤트)는 1992년 바로 셀로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홍성식(현 상무 복싱 전우회 회장)의 치밀한 준비와 기획에 뜻을 같이한 12명의 전 국가대표 출신들이 동참하면서 야심 차게 추진된 행사였다.
이들은 현장에 도착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필승과 선전 그리고 사기진작을 고취(鼓吹)시키기 위하여 격려금 약 1천400만을 선수단에 전달 후방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날 진천 선수촌 방문에는 전 복싱 국가대표 출신 선후배 모임 회 채성배 회장을 비롯 안정현, 마종효, 최기수, 김성주, 김명현, 정연수, 이강수, 이영록, 유지훈, 구재강, 홍성식 등 전직(前職) 복싱 국가대표 출신 12명이 대거 집결했다.
한국 아마복싱은 1954년 제2회 마닐라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박금현(밴텀급)이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강준호를 꺾고 본선에 진출 국내 복싱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획득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꾸준히 성장 해온 아마복싱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는 북한(금메달 3개)의 거센 돌풍에 휘말리면서도 12체급 체급에서 7체급을 석권 북한을 제치고 종합 3위를 차지하는데 견인차 (牽引車) 역할을 했다.
88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6년 에는 김유현을 비롯한 12체급 전 체급에서 금메달을 획득 국내 복싱사상 최초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면서 한국 아마복싱 대표팀은 최절정기에 올랐다.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을 끝으로 김승연 복싱협회 회장의 퇴진과 맞물린 한국대표팀은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5개 1994년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2개를 획득했다.
그러던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최초로 노골드에 그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물론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후보였던 신은철이 준결승에서 홈 텃세에 밀려 탈락했지만 이보다는 복싱 인구의 감소와 맞물려 선수층이 헐거워진 이유도 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후 한국 아마복싱은 아시아 맹주(盟主) 자리에서 스멀스멀 멀어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번 행사는 전 복싱 국가대표팀 선배들이 의기투합 이런 훈훈한 이벤트 행사를 주최한 것은 2026년 이번 나고야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이번 대회를 시금석(試金石)으로 삼아 반전(反轉)의 카드를 마련하기 위한 선배 복서들의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이 자리에는 항상 정의롭고 투명한 행정으로 진천 선수촌을 힘차게 이끄는 탁구 국가대표 출신의 김택수 촌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1970년 전남태생의 김택수 촌장은 1989년 태국에서 열린 유라시아 탁구대회에 출전할 때 세계랭킹 42위였다. 그런 그가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5위인 폴란드 선수를. 결승에서 88서울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한 김기택을 각각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96년에는 96 올스타 서킷 대만대회에서 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 공링후이(중국) 를 3ㅡ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선수가 바로 김택수 촌장이다.
우리 대표선수단도 이점 명심하고 최후에 일각(一刻)까지 선전 분투하길 바란다. 한편 이번 대회 출전하는 자랑스런 복싱 국가대표팀 명단은 다음과 같다.
남자팀은 신재용 (국군체육부대) 55Kg급. 장동환 (한국체육대회) 60Kg급. 김준수(보령시청) 70Kg급. 김민성(한국체대) 80Kg급. 김기채(수원시청) 90Kg급. 주태웅(화순군청) 90Kg 이상 급등 6체급에서 출전한다.
여자선수단으로 눈을 돌리면 박초롱 51Kg급. 양이영(울산광역시) 54Kg급. 오연지 (울산광역시청) 60Kg급. 선수진(성남시청) 65Kg급. 성수연(원주시청) 75Kg급 5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전(前) 복싱 국가대표팀 출신 선후배 모임 회장이며 1991년 호주 세계 선수권 복싱대회 동메달리스트이자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채성배 회장은 이번 행사에 격려금 오백만원을 쾌척한 김명현 후배가 적극 참여하면서 이번 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둔 대표팀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고 밝혔다.
채 회장은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후배 복서 김명현은 대학 시절 평소에 막역하게 지냈던 모 선배 복서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생계에 위협을 받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선배를 위해 경기도 김포시 본 공장 인근에 직접 구내식당을 차려준 일화는 복싱계의 보기 드문 미담을 제공한 복싱계 의인(義人)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필자가 기억하는 1974년 서울 태생의 김명현은 리라 공고 시절 1992년 제73회 전국체전 고등부(라이트급)에서 서울팀에서 유일한 금메달을 획득한 왼손잡이 복서였다.
1993년 서울. 시립대에 진학 그해 12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차 선발전(LW급)에서 4강에서 정수연(상무) 결승에서 김호철(리라공고)을 차례로 꺾고 선수촌에 입성한 국가대표 출신이다.
그는 필자에게 용산공고 최요삼 형이 리라공고 선수에게 억울하게 패한 경기를 서두에 던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용산공고 최준욱과 벡달근이 리라공고 선수에게 사전 작업에 의해 3연패 한 장면이 스쳐갔다. 역(逆)으로 임계룡이 김창현을 홍성민이 문철웅을 이긴 장면도 떠올랐다. 세월이 흐르면 패배의 아픔도 승리의 기쁨도 모두 추억 이란 이름으로 재생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다.
이날 격려금 전달행사 현장에는 베드민턴계의 세계적인 슈퍼스타 안세영의 부친 안정현도 함께하면서 후배들을 격려했다.
1969년 전남 나주 출신의 안정현은 1995년 6월 제4회 서울컵 복싱대회에서 SH 급으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한 국가대표 출신의 복싱선수다. 끝으로 김승미 전(前) 대표팀 감독은 이번 아시안게임 메달 전망에 대해 복싱은 변수가 많은 종목이라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2018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부 60Kg급 오연지 선수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메달권에 가장 근접한 선수라고 관망했다. 컬럼을 마무리할 무렵 전파를 타고 가수 심수봉의 무궁화노래 가사가 가슴을 적시는 순간 마음이 울컥해진다. 포기하면 안된다. 눈물 없인피지 않는다. 의지다 하면 된다. 나의 뒤를 부탁한다. 애독자 여러분들 풍요로운 추석 명절 맞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