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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섭의 복싱 열전] 복싱계 풍운아 WBC 밴텀급 챔피언 변정일 숨은 비화

26.08.2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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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용복회(용인대 복싱 동문회) 김영관 회장이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 오찬을 하면서 담화를 나누었다. 김영관은 1967년 충남 태안 출신으로 인천 광호 체육관에서 복싱을 수련한 대학 선수권자 출신이다. 충남 태안은 삼국 시대부터 서해안의 해상 교역 요충지로 조선 시대에는 왜구를 막는 안 흥성이 축조된 유서 깊은 고장이다.

이고장 태안 출신의 김영관은 얼마전 자신의 고향 선배이자 전 WBC 밴텀급 변정일 챔피언과 경기도 모처에서 만나 오랜만에 만나 인사를 드리고 왔다고 전했다. 변정일은 1966년 11월16일 충남 태안 출신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전 동양 챔피언 최문석 관장이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진학도 포기하고 복싱을 수련하였다.






그리고 얼마후 서울에 입성 김태식 김사왕 쌍두마차가 활약한 원진 체육관에서 김용석 사범의 지도로 1983년 서울 신인과 전국 신인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1984년 어느날 황철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강동고에 김용석 사범의 가교(架橋) 역활로 동기들보다 2년 늦게 진학한 변정일은 1985년 5월 제4회 서울 월드컵 1차 선발전 플라이급 결승에서 후에 세계 군인선수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성광배 (한국체대)를 판정으로 잡고 우승을 차지해 비로소 주목받는다.

졸업반인 1986년 제67회 전국체전(밴텀급) 준결승에서 충남 대표 민영천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다. 이경기에서 민영천이 패하자 강석구 관장이 격렬하게 항의할 정도로 심판 판정에 의문점이 많은 경기였다. 변정일에 패한 민영천은 그해 12월 프로에 전향 제16회 MBC 전국 신인왕전에서 최우수선수상 (MVP)를 받으며 변정일에 패한 아픔을 달랬다.

1987년 동국대학(감독 김진영)에 진학한 변정일은 그해 7월 제17회 대통령 배 대회에서 대구 대표 남성희를 판정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이경기에서 패한 대구팀 관계자들은 링 위에 의자를 던지면서 10분간 불공정한 판정에 격렬하게 항의할 정도로 논란이 많은 판정이었다. 1987년 제13회 킹스컵 대회에 출전한 변정일은 8강에서 태국 선수에게 패한다.


이대회 우승자는 변정일을 꺾은 태국 선수를 5ㅡ0 판정으로 제압한 국제대회 3관왕에 빛나는 김성길이었다. 1988년 3월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제1회 서울컵 복싱 대회가 열렸다. 이대회에서 밴텀급에서 국제대회 7관왕 허영모를 위시하여 국제대회 3관왕 김성길(상무) 국제대회 5관왕 서정수(홍익대) 그리고 국제대회 은1 동1를 획득한 변정일등 4명의 선수로 압축되었다. 이대회에서 변정일은 서정수에 패해 동메달에 머물렀고 서정수는 허영모를 꺾고 올라온 소련 선수를 꺾고 대망의 우승을 차지했다.

곧이어 88서울 올림픽 선발전이 열렸다. 대회를 앞두고 김성길이 부상으로 중도에 탈락하면서 허영모 변정일 서정수 3명이 리그전을 펼친다. 이대결에서 변정일은 허영모에 패했지만 서정수를 잡았고 허영모는 변정일을 잡았지만 서정수에 패해 3 선수 모두 물고 물리면서 1승1패를 기록한다.

이때 협회에서 허영모는 국제 무대에서 전력이 노출되어 메달획득이 어렵다는 터무니없는 명분을 들어 제외하면서 서정수와 변정일이 단두대 매치를 벌인다. 결과는 변정일이 서정수(홍익대)에 3ㅡ2 판정승을 거두고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한다. 서정수가 패하자 이를 지켜본 홍익대 총장은 불공정한 판정에 회의를 느끼고 즉석에서 홍익대 복싱부는 해체를 선언한다. 한편 서울 올림픽 본선 2회전에서 변정일은 불가리아의 흐르스토프와 대결한다. 흐르스토프는 2년전 리노 세계선수권 8강에서 문성길에 2회 RSC로 패한 복서였다. 이 대결에서 뉴질랜드 주심 워커의 불공정한 경기 운영으로 4ㅡ1 판정으로 패한다.

주심 워커는 4년전 LA 올림픽 미들급 결승에서 신준섭과 버질. 힐 전에서 주심을 본 우리에게 낯익은 얼굴이었다. 이때 변정일은 67분간 링을 점거하면서 침묵의 시위를 하였고 김성은 감독은 불가리아 심판장(체체프)에게 책상을 치며 격렬하게 항의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 경기는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상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판정 논란의 중심에 선 경기였다.

한번 내려진 판정은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다시 돌릴 수 없듯이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변정일의 억울한 패배 덕분에 이후 한국복싱은 반전을 시작한다. 예선 마지막 날 헤비급에 출전한 백현만이 유고의 마브로빅에게 3회 집중타를 맞고 그로기 상태까지 몰렸지만 심판들은 백현만의 5ㅡ0 판정승을 선언하였다. 이후에도 한국 복서들이 백현만처럼 3차례 경기에서 열세한 경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변정일의 불공정한 판정으로 패한 덕분에 전승을 거두면서 예상외로 한국복싱은 88서울 올림픽에서큰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올림픽을 마치고 플라이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국제대회 7관왕 김광선과 함께 변정일은 화랑 스포츠 타운 장병오 회장에게 스카웃 되어 1990년 2월 프로에 대뷔한다. 그리고 3년 1개월이 지난 1993년 3월28일 8전 8승(4KO)을 기록한 변정일은 WBC 밴텀급 챔피언 빅토르 라바넬레스(멕시코)를 홈으로 불러들여 일전을 펼친다. 26살의 변정일은 31살의 챔피언 라바넬레스와 대결에서 셈세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3ㅡ0 판정승을 거두고 셰계 정상에 올라 올림픽에서 억울하게 탈락한 아쉬움을 털어냈다.



한편 1990년 11월 프로에 대뷔한 김광선은 1992년 6월 WBC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했지만 챔피언 움베르토 곤잘레스(멕시코)에게 12회 55초만에 역전 KO 타이틀 탈환에 실패하였고 이어진 1993년 7월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동급타이틀전에서도 마이크 카바할(미국) 에 7회 KO패 당하면서 은퇴 수순을 밟았다. 변정일은 1993년 12월23일 일본 나고야에서 펼친 2차방어전에서 도전자 야쿠시지에게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 12회 2ㅡ1 판정패하면서 역시 김광선처럼 은퇴 수순을 밟았다.

1989년 유명우 문성길 김용강 백인철 이열우 박영균등 도합 6명의 세계 챔피언을 보유한 한국 프로복싱은 변정일의 방어전 실패로 무관으로 전락하면서 한국 프로복싱은 침체기를 맞이하였다. 링을 떠난 변정일은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프로모터를 겸업 국내 최초의 여성 세계 챔피언 이인영을 탄생시켰고 또한 차분한 음색으로 MBC 방송해설가로 임명되어 구수한 입담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현재 변정일은 모든 걸 내려놓고 평택에서 개인사업(개성만두)을 하면서 경기도 사격테마파크 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는 11월이 환갑을 맞이하는 변정일 챔프의 인생 3막이 화려하게 펼쳐지길 바란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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