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스포츠 칼럼] 복싱 대통령 장정구와 야구 레전드 조계현의 묘한 공통점
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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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지난 2013년 3월 필자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복싱 레전드 장정구 야구 레전드 조계현 두 사람이 장례식장에 참석하였다. 그 당시에는 두 레전드의 참석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가 2년 전 어느날 장정구의 탄생지인 부산시 서구 아미동2가 233번지를 취재차 현장을 방문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왜냐면 아미동 이곳이 조계현 KBO 특보가 나고 자란 군산시 오룡동과 매우 흡사한 환경과 여건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바로 아마동 이곳이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후 열차로 부산에 도착한 피난민들이 영도구의 청학동과 함께 모여 살던 부산의 대표적인 피난촌 집성촌(集成村)이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야구 레전드 조계현도 1951년 1.4 후퇴때 군산에 모여든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인 오룡동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이글을 통해 알수 있듯이 장정구 조계현 양친 모두가 북한에서 태어난 실향민(失鄕民)이란 공통점을 품고 있었다. 6.25 사변 당시 북한을 떠나 군산 수용소에 운집한 5만 6천 명에 으르는 피난민들은 휴전이 되자 이곳 오룡동을 비롯 해망동 선양동 일대에 판잣집을 짓고 자연스럽게 정착 달동네를 형성하였다. 이곳에는 모시산(毛施山)이란 낮은 야산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태어난 필자와 조계현은 초.중 시절 함께 야구를 하면서 추억을 공유한 친구였다. 또한 모시산 줄기에는 88 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 김광선을 비롯 올림픽에 2회 연속 출전한 전진철과 박구일등 3명의 레전드 복서가 탄생하였다. 야구로 눈을 돌리면 원조 대도 김일권을 시발로 조계현 정명원 백인호 한경수 박찬홍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 모시산의 정기(正氣)를 이어받고 이곳에서 태어났다.
상호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조계현과 장정구는 이런 환경의 영향 때문인지 남다른 투사(鬪士) 기질을 공유한 레전드였다. 우선 장정구는 2000년 WBC 선정 20세기 위대한 복서 25인에 선정되었을 때 WBA J. 웰터급 챔피언 아론 프라이어와 함께 사나운 매를 뜻하는 호크(Hawk)라는 닉네임을 현지 언론으로부터 사사 받았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파이터였다. 한국 복서로 최초로 2009년 12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장정구는 더 이상 수식어가 필요 없는 한국을 대표하는 복싱 대통령이다.
험준한 아미동의 우범지대(虞犯地帶)에서 나고 자란 장정구는 국내에서 최초로 WBC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 15차 방어의 대업을 창출하였다. 1964년 3월29일 3남 3녀 중 막내로 군산시 오룡동에서 태어난 조계현의 별명은 싸움닭이다. 두둑한 배짱으로 상대를 압도하며 초등학교 시절 전국 초등학교 야구 선수권대회 2연패를 달성하였다. 이런 관록을 보유한 조계현은 1979년 군산남중 재학시절 군산상고와 연습경기에서 완투승을 거두는 진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당시 최관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군산상고 멤버는 투수 조도연 강대호 포수 임혁 내야수 임동구 차정득 연영철 최기남 김수홍 고성훈 조재율 원웅재. 외야수 김중찬 김평호 장일성 김성수 등이 포진되어 있었다. 하지만 군산남중 2학년 조계현의 초인적(超人的)인 역투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초등학생이 중학생을 꺾기 힘들고 고등학생이 대학생을 제압하기 힘들 듯이 중학교 팀이 고교 팀을 제압한다는 사실은 확률적으로 매우 희박한 현실이었다. 1981년 조계현은 군산상고에 입학 대담하고 안정된 피칭을 선보이며 그해 대통령배 대회에서 우수투수상과 최다 타점상을 수상 스타탄생의 서곡을 울렸다. 1983년 부상으로 인해 유명선 정성룡이 투타에서 활약한 포철공고에 3연패를 당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이에 불구하고 고교 재학 중 모교 군산상고에 우승 4차례 준우승 2차례를 작성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연세대학 졸업 후 88 서울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조계현은 1989년 26살 늦은 나이에 해태 타이거즈팀에 입단 통산 126승을 걷어올렸다. 조계현은 1993년과 1994년에 다승왕에 올랐고 1995년에는 평균자책점 1위를 달성하였다. 서른 줄을 넘어가는 전환점에서 패스트. 볼 위주의 윽박지르는 싸움닭에서 구종 습득 능력이 뛰어난 팔색조 투수로 변신 일궈낸 금자탑이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유전적인 영향과 더불어 환경적인 요인이 합성되어 성격 형성을 이룬다고 한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조선 후기 이중환이 전국을 답사하며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여 집대성한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함경도는 오랑캐와 경계에 있으므로 도민의 성질이 강하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한 까닭에 사납고 모질다고 파악하였다. 또한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은 풍수지리에 입각한 팔도민(八道民) 습성에서 평안도 시람은 사나운 호랑이가 숲에서 나온다는 뜻으로 맹호출림(猛虎出林)이라 하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조계현 장정구 두 레전드는 부모님의 강한 DNA를 물려받아 이를 디딤돌 삼아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선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강직하고 대쪽 같은 올곧은 상남자 장정구 조계현 두명의 레전드 안녕을 빌면서 이번 주 칼럼을 마무리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바로 아마동 이곳이 1950년 6.25 전쟁 발발 이후 열차로 부산에 도착한 피난민들이 영도구의 청학동과 함께 모여 살던 부산의 대표적인 피난촌 집성촌(集成村)이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야구 레전드 조계현도 1951년 1.4 후퇴때 군산에 모여든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집성촌인 오룡동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이글을 통해 알수 있듯이 장정구 조계현 양친 모두가 북한에서 태어난 실향민(失鄕民)이란 공통점을 품고 있었다. 6.25 사변 당시 북한을 떠나 군산 수용소에 운집한 5만 6천 명에 으르는 피난민들은 휴전이 되자 이곳 오룡동을 비롯 해망동 선양동 일대에 판잣집을 짓고 자연스럽게 정착 달동네를 형성하였다. 이곳에는 모시산(毛施山)이란 낮은 야산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태어난 필자와 조계현은 초.중 시절 함께 야구를 하면서 추억을 공유한 친구였다. 또한 모시산 줄기에는 88 서울올림픽 복싱 금메달 김광선을 비롯 올림픽에 2회 연속 출전한 전진철과 박구일등 3명의 레전드 복서가 탄생하였다. 야구로 눈을 돌리면 원조 대도 김일권을 시발로 조계현 정명원 백인호 한경수 박찬홍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 모시산의 정기(正氣)를 이어받고 이곳에서 태어났다.
상호간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조계현과 장정구는 이런 환경의 영향 때문인지 남다른 투사(鬪士) 기질을 공유한 레전드였다. 우선 장정구는 2000년 WBC 선정 20세기 위대한 복서 25인에 선정되었을 때 WBA J. 웰터급 챔피언 아론 프라이어와 함께 사나운 매를 뜻하는 호크(Hawk)라는 닉네임을 현지 언론으로부터 사사 받았을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파이터였다. 한국 복서로 최초로 2009년 12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장정구는 더 이상 수식어가 필요 없는 한국을 대표하는 복싱 대통령이다.
험준한 아미동의 우범지대(虞犯地帶)에서 나고 자란 장정구는 국내에서 최초로 WBC 라이트 플라이급 타이틀 15차 방어의 대업을 창출하였다. 1964년 3월29일 3남 3녀 중 막내로 군산시 오룡동에서 태어난 조계현의 별명은 싸움닭이다. 두둑한 배짱으로 상대를 압도하며 초등학교 시절 전국 초등학교 야구 선수권대회 2연패를 달성하였다. 이런 관록을 보유한 조계현은 1979년 군산남중 재학시절 군산상고와 연습경기에서 완투승을 거두는 진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당시 최관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군산상고 멤버는 투수 조도연 강대호 포수 임혁 내야수 임동구 차정득 연영철 최기남 김수홍 고성훈 조재율 원웅재. 외야수 김중찬 김평호 장일성 김성수 등이 포진되어 있었다. 하지만 군산남중 2학년 조계현의 초인적(超人的)인 역투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초등학생이 중학생을 꺾기 힘들고 고등학생이 대학생을 제압하기 힘들 듯이 중학교 팀이 고교 팀을 제압한다는 사실은 확률적으로 매우 희박한 현실이었다. 1981년 조계현은 군산상고에 입학 대담하고 안정된 피칭을 선보이며 그해 대통령배 대회에서 우수투수상과 최다 타점상을 수상 스타탄생의 서곡을 울렸다. 1983년 부상으로 인해 유명선 정성룡이 투타에서 활약한 포철공고에 3연패를 당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이에 불구하고 고교 재학 중 모교 군산상고에 우승 4차례 준우승 2차례를 작성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연세대학 졸업 후 88 서울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조계현은 1989년 26살 늦은 나이에 해태 타이거즈팀에 입단 통산 126승을 걷어올렸다. 조계현은 1993년과 1994년에 다승왕에 올랐고 1995년에는 평균자책점 1위를 달성하였다. 서른 줄을 넘어가는 전환점에서 패스트. 볼 위주의 윽박지르는 싸움닭에서 구종 습득 능력이 뛰어난 팔색조 투수로 변신 일궈낸 금자탑이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유전적인 영향과 더불어 환경적인 요인이 합성되어 성격 형성을 이룬다고 한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조선 후기 이중환이 전국을 답사하며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여 집대성한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함경도는 오랑캐와 경계에 있으므로 도민의 성질이 강하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한 까닭에 사납고 모질다고 파악하였다. 또한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은 풍수지리에 입각한 팔도민(八道民) 습성에서 평안도 시람은 사나운 호랑이가 숲에서 나온다는 뜻으로 맹호출림(猛虎出林)이라 하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조계현 장정구 두 레전드는 부모님의 강한 DNA를 물려받아 이를 디딤돌 삼아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선점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강직하고 대쪽 같은 올곧은 상남자 장정구 조계현 두명의 레전드 안녕을 빌면서 이번 주 칼럼을 마무리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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