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싱사상 최고의 왼손잡이 복서 킬러는 과연 누구일까요 ?
2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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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하다 보면 가끔씩 왼손잡이 복서와 마주할 때가 있다. 분명한 사실은 왼손잡이 복서는 희소성의 원리 때문인지 상당히 까다롭다는 사실이다. 필자도 현역 시절 13회 대통령배 4강에서 오광수(전남체고), 83 로마 월드컵 결승에서 권채오 (한국화약) 와 두 차례 왼손잡이 복서들과 맞대결 1승1패를 기록했다.
이번주 컬럼은 복싱사상 최고의 왼손잡이 복서 킬러로 명성을 날린 김용강ㆍ고희룡 두 복서 스토리에 대해 열거(列擧) 해 본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복서는 국내 프로복싱사상 최초로 양대 기구(WBA. WBC)를 접수한 챔피언 김용강이다. 김용강은 1965년 1월 전남 화순 출신이다. 168Cm 장신의 김용강은 섬광처럼 터지는 카운터를 주무기로 왼손잡이 복서를 박멸(撲滅)한 정통파 복서였다.
1983년 유원건설 김치복 관장의 지도로 서울 신인대회 우승을 발판으로 김용강은 아마 츄어 무대에 등장한다. 치타같이 빠른 스피드를 보유한 김용강은 80년대 중 후반 국가대표 왼손잡이 삼총사로 불리는 변정일ㆍ서정수ㆍ황경섭 3명을 차례로 꺾으며 왼손잡이 복서 킬러로 명성을 높혔다.
88 서울올림픽 대표 출신으로 WBC 밴텀급 챔피언을 지낸 변정일 (안흥 공전)은 신인 시절 김용강에 2연패를 당했다. 또한 1985년 제3회 청소년 세계 선수권(라이트 플라이급)을 재패한 황경섭(충주농고), 국제대회 5관왕을 달성한 서정수(운봉공고)도 김용강에게 판정으로 차례로 패했다.
특히 허영모ㆍ변정일을 꺾은 강타자 고(故)서정수는 오래전 필자와 대담에서 고교시절 김명복 박사배(코크급)에서 김용강과 맞붙어 판정승을 거두고 링 아래로 내려갔다고 했다.
그러나 잠시 후 장내 방송에서 판정이 잘못 내려졌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링에 올라갔더니, 이번엔 김용강의 손이 올라가는 해프닝이 일어났다고 말하며 지난날의 김용강에 패한 경기를 회고했었다.
김용강은 1985년 4월 프로에 전향해 왼손잡이 복서인 WBA 플라이급 챔피언 레오파드 다마쿠마(일본) WBA, 플라이급 챔피언 엘비스 알바레스(콜롬비아)를 연파하며 기염을 토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용강은 WBC · WBA 플라이급 타이틀 방어전에서 왼손잡이 복서 에밀 마쓰시마 (일본), 조나단 페날로사(필리핀)를 각각 판정과 KO로 잠재우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김용강은 아마 츄어시절 1983년 12월 LA 올림픽 1차 선발전 결승에서 김광선(동국대)에 판정으로 패했다. 이어진 1984년 2월 LA 올림픽 2차 선발전 8강에서 왼손잡이 복서 오광수에게 유일하게 판정으로 패했다.
그리고 이듬해 프로에 전향 국내에서 최초로 양대 기구(WBAㆍWBC) 세계 정상에 오르면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아픔을 달랬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왼손잡이 복서로 공인(公人)된 복서는 국가대표로 국제대회 3관왕을 달성한 고희룡(웅비) 이다. 1961년 8월에 제주에서 태어난 고희룡은 1979년 18살의 늦은 나이에 복싱에 입문 페더급에서 조규남(원광대) 박기철(한국체대) 진행범(한국체대) 등에 연달아 패하면서 한뼘씩 성장한 복서다.
1981년 대통령 배와 김명복 배에서 연거푸 준우승을 차지한 고희룡은 1982년 제6회 김명복 박사에서 우승(라이트급)을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는다. 이어진 그해 뉴델리 아시안게임선발전 라이트급 4강에서 국제대회에서 3관왕을 달성한 국가대표 간판 이현주를 꺾고 대이변을 창출한다.
이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인도네시아 대통령 배 킹스컵대회에 출전한 고희룡은 1984년 LA 올림픽(LW급) 최종선발전 결승에서 국제대회 9관왕을 달성한 천하무적(天下無敵)인 왼손잡이 복서 김동길과 대전한다. 사실 김동길과 대결을 앞둔 고희룡은 당시 자타가 공인하는 왼손잡이 복서 킬러였다.
전형적인 두뇌 플레이로 경기를 일관하는 고희룡은 그의 친형 고성룡이 원희룡 전(前) 제주도지사의 서울대학 2년 선배일 정도로 DNA가 우수한 혈통 좋은 가문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송경섭(한국체대)을 위시하여 제9회 킹스컵 국가대표 이봉래(한국체대)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월드 스타(World star) 김기택(수원대)등 국내 정상급 왼손잡이 복서 3명과 7차례 맞대결을 펼쳐 전승을 거둔 복서가 바로 고희룡이었다.
고희룡과 김동길의 대결은 결론부터 말하면 김동길이 경기 내용 면에선 패한 경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국제대회 9관왕 김동길의 판정승으로 일단락(一段落) 되었다. 다시 말해 김동길이 네임 벨류(Name value)에서 앞서 승리한 대결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김동길이 자신이 패한 경기라고 훗날 스스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고희룡은 그해 7월 핀란드에서 개최된 템버 대회를 비롯 국제대회에서 3관왕을 연거푸 걷어 올리면서 김동길에게 억울하게 패한 경기의 아픔을 달랬다.
그 당시에는 유독 1961년생 소띠 복서들이 황소 떼처럼 군웅할거 (群雄滑車)하면서 아시아 무대를 평정한 시절이었다. 지난해 고인이 된 1979년 최초의 세계(청소년) 선수권자 박기철을 위시하여 곽귀근, 이현주, 고희룡, 전칠성, 문성길, 김유현, 김동길, 최우진, 진행범, 고희룡 등이 80년대를 전후 하여 한 시대를 풍미한 61년생 소띠생들이었다.
한편 왼손잡이 국가대표 3총사 들에게 기록적인 7연승을 기록한 고희룡은 LA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파이터 전칠성(목포대) 에게 3연패를 당했다. 중요한 사실은 전칠성은 왼손잡이 복서 김기택에게 3연패(2KO)를 당하면서 그 당시 복싱계의 대표적인 먹이사슬 관계를 형성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김용강이 오른손 카운터로 왼손잡이 복서들 발목을 잡았다면 고희룡은 역으로 상대방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각도(예각. 직각. 둔각)에서 왼손훅을 품어내면서 왼손잡이 복서들을 초토화(焦土化) 시켰다.
현재 부산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김용강 챔프와 제주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가 생활하는 전 제주도 복싱협회 고희룡 전무 두분의 앞길에 영광이 함께하길 기대하면서 이번주 컬럼을 마무리한다.
이번주 컬럼은 복싱사상 최고의 왼손잡이 복서 킬러로 명성을 날린 김용강ㆍ고희룡 두 복서 스토리에 대해 열거(列擧) 해 본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복서는 국내 프로복싱사상 최초로 양대 기구(WBA. WBC)를 접수한 챔피언 김용강이다. 김용강은 1965년 1월 전남 화순 출신이다. 168Cm 장신의 김용강은 섬광처럼 터지는 카운터를 주무기로 왼손잡이 복서를 박멸(撲滅)한 정통파 복서였다.
1983년 유원건설 김치복 관장의 지도로 서울 신인대회 우승을 발판으로 김용강은 아마 츄어 무대에 등장한다. 치타같이 빠른 스피드를 보유한 김용강은 80년대 중 후반 국가대표 왼손잡이 삼총사로 불리는 변정일ㆍ서정수ㆍ황경섭 3명을 차례로 꺾으며 왼손잡이 복서 킬러로 명성을 높혔다.
88 서울올림픽 대표 출신으로 WBC 밴텀급 챔피언을 지낸 변정일 (안흥 공전)은 신인 시절 김용강에 2연패를 당했다. 또한 1985년 제3회 청소년 세계 선수권(라이트 플라이급)을 재패한 황경섭(충주농고), 국제대회 5관왕을 달성한 서정수(운봉공고)도 김용강에게 판정으로 차례로 패했다.
특히 허영모ㆍ변정일을 꺾은 강타자 고(故)서정수는 오래전 필자와 대담에서 고교시절 김명복 박사배(코크급)에서 김용강과 맞붙어 판정승을 거두고 링 아래로 내려갔다고 했다.
그러나 잠시 후 장내 방송에서 판정이 잘못 내려졌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링에 올라갔더니, 이번엔 김용강의 손이 올라가는 해프닝이 일어났다고 말하며 지난날의 김용강에 패한 경기를 회고했었다.
김용강은 1985년 4월 프로에 전향해 왼손잡이 복서인 WBA 플라이급 챔피언 레오파드 다마쿠마(일본) WBA, 플라이급 챔피언 엘비스 알바레스(콜롬비아)를 연파하며 기염을 토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용강은 WBC · WBA 플라이급 타이틀 방어전에서 왼손잡이 복서 에밀 마쓰시마 (일본), 조나단 페날로사(필리핀)를 각각 판정과 KO로 잠재우고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김용강은 아마 츄어시절 1983년 12월 LA 올림픽 1차 선발전 결승에서 김광선(동국대)에 판정으로 패했다. 이어진 1984년 2월 LA 올림픽 2차 선발전 8강에서 왼손잡이 복서 오광수에게 유일하게 판정으로 패했다.
그리고 이듬해 프로에 전향 국내에서 최초로 양대 기구(WBAㆍWBC) 세계 정상에 오르면서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아픔을 달랬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왼손잡이 복서로 공인(公人)된 복서는 국가대표로 국제대회 3관왕을 달성한 고희룡(웅비) 이다. 1961년 8월에 제주에서 태어난 고희룡은 1979년 18살의 늦은 나이에 복싱에 입문 페더급에서 조규남(원광대) 박기철(한국체대) 진행범(한국체대) 등에 연달아 패하면서 한뼘씩 성장한 복서다.
1981년 대통령 배와 김명복 배에서 연거푸 준우승을 차지한 고희룡은 1982년 제6회 김명복 박사에서 우승(라이트급)을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는다. 이어진 그해 뉴델리 아시안게임선발전 라이트급 4강에서 국제대회에서 3관왕을 달성한 국가대표 간판 이현주를 꺾고 대이변을 창출한다.
이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인도네시아 대통령 배 킹스컵대회에 출전한 고희룡은 1984년 LA 올림픽(LW급) 최종선발전 결승에서 국제대회 9관왕을 달성한 천하무적(天下無敵)인 왼손잡이 복서 김동길과 대전한다. 사실 김동길과 대결을 앞둔 고희룡은 당시 자타가 공인하는 왼손잡이 복서 킬러였다.
전형적인 두뇌 플레이로 경기를 일관하는 고희룡은 그의 친형 고성룡이 원희룡 전(前) 제주도지사의 서울대학 2년 선배일 정도로 DNA가 우수한 혈통 좋은 가문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아시아선수권 2연패를 달성한 송경섭(한국체대)을 위시하여 제9회 킹스컵 국가대표 이봉래(한국체대)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월드 스타(World star) 김기택(수원대)등 국내 정상급 왼손잡이 복서 3명과 7차례 맞대결을 펼쳐 전승을 거둔 복서가 바로 고희룡이었다.
고희룡과 김동길의 대결은 결론부터 말하면 김동길이 경기 내용 면에선 패한 경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국제대회 9관왕 김동길의 판정승으로 일단락(一段落) 되었다. 다시 말해 김동길이 네임 벨류(Name value)에서 앞서 승리한 대결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김동길이 자신이 패한 경기라고 훗날 스스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고희룡은 그해 7월 핀란드에서 개최된 템버 대회를 비롯 국제대회에서 3관왕을 연거푸 걷어 올리면서 김동길에게 억울하게 패한 경기의 아픔을 달랬다.
그 당시에는 유독 1961년생 소띠 복서들이 황소 떼처럼 군웅할거 (群雄滑車)하면서 아시아 무대를 평정한 시절이었다. 지난해 고인이 된 1979년 최초의 세계(청소년) 선수권자 박기철을 위시하여 곽귀근, 이현주, 고희룡, 전칠성, 문성길, 김유현, 김동길, 최우진, 진행범, 고희룡 등이 80년대를 전후 하여 한 시대를 풍미한 61년생 소띠생들이었다.
한편 왼손잡이 국가대표 3총사 들에게 기록적인 7연승을 기록한 고희룡은 LA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파이터 전칠성(목포대) 에게 3연패를 당했다. 중요한 사실은 전칠성은 왼손잡이 복서 김기택에게 3연패(2KO)를 당하면서 그 당시 복싱계의 대표적인 먹이사슬 관계를 형성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김용강이 오른손 카운터로 왼손잡이 복서들 발목을 잡았다면 고희룡은 역으로 상대방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각도(예각. 직각. 둔각)에서 왼손훅을 품어내면서 왼손잡이 복서들을 초토화(焦土化) 시켰다.
현재 부산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는 김용강 챔프와 제주에서 자연인으로 돌아가 생활하는 전 제주도 복싱협회 고희룡 전무 두분의 앞길에 영광이 함께하길 기대하면서 이번주 컬럼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