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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재능이 뛰어나 '슬픈 챔피언'으로 전락한 김지원

26.03.3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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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복싱 원로 조철제 회장 구순 잔치 무대에 올라 진시몬의 '애원'을 열창해 박수를 받은 복싱인이 있다. 그 주인공은 국가 대표 출신에 IBF 세계 챔피언을 역임한 김지원이다.

우렁차게 울려퍼지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참으로 천하의 재주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원은 1959년 8월 서울태생으로 그의 부친은 일본 육사를 나온 엘리트 장교였다.

김지원의 누나는 '아가씨와 건달들'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손숙·박정자·윤석화와 더불어 연극계 4대 인물로 불린 김지숙이다.




김지원의 막내 동생은 영화감독으로 '놈놈놈'·'밀정'· '반칙왕' 등의 작품을 연출해 흥행에 성공한 김지운 감독이다. 이에 더해 김지원의 고종사촌 형은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권투 국가대표(밴텀급) 출신이자 수경사 복싱 감독을 지낸 김창석이다.

김창석은 현역 시절 김인창·유종만·이거성·박인규·황철순과 명승부를 주고받으면서 '독일  탱크'란 별명으로 명성을 날린 복서였다.

1977년 김지원은 남산공전 졸업반 시절 전국대회 2관왕을 달성하며 유제형·장윤호와 트로이카를 이뤘다.

왼손잡이 복서 김지원은 반사신경·동체 시력·두뇌 회전이 발군(拔群)인 천재 복서였다. 단지 아쉬운 점은 프로야구 전(前) 롯데팀 투수 손민한처럼 노력하지 않는 전형적인 게으른 천재였다는 점이다.

1978년 4월 반도체육관 소속 김지원은 아시아청소년대회(파키스탄)에서 필리핀 선수를 1회 KO로 제압해 첫 국제대회 우승을 거머쥐면서 한국복싱의 미래로 주목받는다.

5월에는 제4회 킹스컵대회 선발전 결승에서 박찬희를 3차례나 제압한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유옥균(전남)을 결승에서 꺾고 19세에 국가 대표에 발탁된다. 본선 1회전에서 김지원은 그 유명한 라파엘 오로노(베네주엘라)와 접전 끝에 3ㅡ2 판정패를 당했다. 하지만 내용은 초접전이었다.

 1979년 김지원은 수경사에 입대하면서 화려한 나래를 펴기 시작한다.




그해 7월 제31회 세계군인선수권을 시작으로 5회·6회 태국 킹스컵 금메달, 제9회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모두 석권하며 국제대회 5관왕을 달성한다.

김지원은 마지막 꿈인 올림픽 금메달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해 6월 모스크바 올림픽 선발전(플라이급)에 출전한다.

결승전 상대는 오인석(한국체대)이었다. 오인석은 1977년 아시아 선수권 1회전에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북한의 이병옥을 꺾은 강자였다.



이 대결에서 김지원은 오인석을 군말 없는 5ㅡ0 전원일치 판정으로 꺾고, 올림픽 대표로 선발된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한국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불참한다. 밴텀급의 황철순과 더불어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김지원의 안타까움은 극에 달했다.

이후 전의(戰意)를 상실한 김지원은 이후 2차례 국제대회에 출전했지만 연달아 동메달에 머문다. 그리고 그는 제대와 함께 아마추어 복싱계를 떠난다.

1982년 1월 김지원은 프로로 전향한다. 그리고 1983년 9월에 국내 챔피언, 10월에 동양 챔피언에 순차적(順次的)으로 등극한다.

1985년 1월 김지원은 IBF J.페더급 챔피언 서성인(동아)에 도전한다. 9회까지 접전을 펼치던 김지원은 10회 서성인이 갑자기 경기를 포기해 TKO승을 거두며 정상에 오른다.

김지원은 1986년 6월 복병 카시 카스(필리핀)를 2회 KO승을 거두고 무난하게 4차 방어에 성공한다.

그러나 김지원은 5차 방어전을 앞두고 돌연 무패인 상태에서 타이틀을 반납한 뒤 복싱계에서 별똥별처럼 사라진다.

이유는 속된 말로 연예인 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후 지구레코드사 임정수 대표가 그의 가치를 인정하고 3천만 원의 개런티를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지원은 1988년 보컬 그룹을 결성해 데뷔앨범을 내면서 가수 활동을 펼친다.



1992년 어느날 김지원은 1950년대 건달이었던 정치 주먹 유지광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대명'에 주연으로 케스팅되면서 이번엔 영화배우로 전향한다.

그러나 배우 생명도 길지 않았다. 얼마 뒤 김지원은 이번에는 MBC 복싱 해설가로 변신한다.

다시 얼마 뒤 그는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모든 것이 반짝하고 스파크만 일어났을 뿐 지속적으로 끌고 가는 추진력이 부족해 보였다.

오래 전 필자는 김지원 챔프와 함께 그의 누나인 김지숙 배우의 고양시 일산 자택에서 3시간에 걸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때 배우 김지숙은 "동생 지원이가 챔피언 시절 모은 돈으로 구입한 연희동 APT가 담배 연기처럼 사라진 점이 못내 아쉽다"고 회고했다.

당시 김지원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구입한 32평 아파트는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 자택 인근에 위치한 풍광 좋은 자택이었다.

김지숙 배우는 덧붙여 자신과 영화감독인 막내 동생 지운이는 생활력이 강한 억척스런 모친을 닯아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우뚝 섰다고 돌아봤다.

이에 비해 "유순(柔順)한 우리 지원이는 우리 남매 중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력이 부족했다"며 "복싱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우지 못하고 중도에 떠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밝혔다.

현재 모든 걸 접고 야인(野人)으로 돌아간 김지원은 평소 좋아하던 술도 오래 전 끊고 색다른 재기를 꿈꾸며 심사숙고하고 있다.

여류시인 노천명은 사슴이라는 시 서두(序頭)에서 사슴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고 묘사했다.

역으로 생각하면 김지원도 여러 재능이 뛰어나 비련(悲戀)의 주인공이 된 슬픈 챔피언이었다.

만일 김지원이 무념무상으로 복싱 종목 한곳에 송곳처럼 정밀타격을 했다면 아마 그는 다이아몬드 원석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역사에 남을 화려한 (光彩) 광채를 발했을 것이다. 고희(古稀)를 앞둔 김지원이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밝히며 건승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