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스포츠 컬럼] 7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황충재와 황철순의 운명적인 인연
2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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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복싱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동양 웰터급 챔피언을 지낸 황충재는 1958년 4월 전남 광양태생이다. 그가 복싱을 시작한 동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두 주먹으로 야인시대에 등장하는 김두한처럼 풍운아적 기질을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주에 있는 영산포 상고에서 복싱을 수학한 황충재는 졸업반인 1977년 복싱에 매진 제58회 전국체전(웰터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엘리트 복싱으로 전환한다. 그해 겨울 태릉선수촌에서 국가대표 평가전이 열렸다. 웰터급은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금메달 김주석이 부동의 아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김주석의 상대는 정용석이었다. 그러나 경기를 앞두고 정용석이 펑크를 낸다. 결국 조철제 복싱 전무의 추천으로 황충재는 대타로 출전 예상을 뒤엎고 김주석을 침몰시키고 태극마크를 달았다.
1978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속전속결로 창설된 한국체대 2기로 진학한 황충재는 박형춘 감독의 지도로 기량이 일취월장한다. 그리고 그해 4월에 벌어진 제2회 세계 선수권 선발전 우승과 5월에 아시아 청소년 대회(파키스탄)를 휩쓸며 2관왕을 달성한다. 황충재는 12월 방콕에서 개최된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
여기서부터 황충재와 황철순의 숨은 비화가 탄생한다. 당시 밴텀급에 선발된 황철순은 라이트 웰터급에 출전한 김인창과 룸메이트를 형성하고 있었다. 황철순과 김인창은 경흥 체육관 선후배지간으로 친형제같이 지내는 절친이었다. 그때 황충재가 매트리스를 품고 황철순과 김인창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방에 불쑥 나타난다. 이유는 단 하나 19세 소년 황충재는 선망의 대상이자 5년차 국가대표 간판 황철순과 동숙해야 금메달을 딸 것 같은 막연(漠然)한 생각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방에 기숙(寄宿)하던 황충재 김인창 황철순 3명은 나란히 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천금 같은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특히 황충재 김인창 이들의 금메달은 한국체대 창설후 처음으로 배출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이 금메달로 인해 복싱계 페스탈로치라 불리는 박형춘 한국체대 감독은 총장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그럼 신출(新出)내기 황충재가 겁 없이 대선배 황철순의 방을 왜 찾아갔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황철순 황충재 두 복서가 같은 창원 황씨여서 황철순이 평소에 친동생처럼 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황철순은 황충재가 금메달을 획득한 후 한국체대 선배들의 속칭 상급자가 하급자를 괴롭히는 <똥군기> 때문에 동국대학으로 옮기고 싶다는 말을 전하자 그는 곧바로 최재구 의원( 당시 공화당 소속의 동국대 총 동창회장) 자택이 있는 정릉 집을 찾았다.
최재구 의원은 1979년 5월 26일 황철순이 여자배구 국가대표 출신의 정순옥 여사와 엠버서더 호텔에서 백년가약을 맺을 때 주례를 섰던 인물이었다. 결국 황철순의 제안을 받아들인 최재구 의원에 의해 황충재는 1979년 동국대로 편입하였다. 여담이지만 프로복싱 최초의 2체급 챔피언 홍수환과도 국제대회 6관왕 황철순과 사이가 매우 각별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역시 홍수환의 모친 황농선 여사가 바로 창원 황씨였기 때문이다. 홍수환 챔프는 그 때문인지 동양 페더급 챔피언 황복수를 친동생처럼 끔찍이 아낀다. 이 사연도 역시 동양 페더급 챔피언 황복수가 창원 황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창원 황씨지만 둘이 접촉하면 상호 냉소적인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복서들이 있다. 얼마전 타계한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준석과 황충재가 주인공이다.
필자는 생전에 황준석에게 황충재와의 경기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황준석은 경기장에서 두차례 정도 황충재와 마주쳤다. 하지만 황준석은 살짝 목례만 하고 돌아섰다고 밝혔다. 여기서 알수 있듯이 황씨 성을 보유한 스타 복서들은 대부분 창원 황씨가 주류(主流)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1989년 88체육관에서 트레이너 생활할 때 황충재와 인연을 맺었다. 사연은 이렇다. 1990년 6월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문성길이 길베르토 로만(멕시코)과 1차 방어전을 앞둔 어느날 방송해설가로 변신한 황충재가 88 체육관을 찾았다. 목적은 한국에 원정온 도전자 길베르토 로만의 경력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황충재 위원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로만의 이력(履歷)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잠시후 황충재 위원은 필자에게 형이 나이트 클럽(젬마)과 양복점 (피렌체)를 운영하면서 바쁘게 활동하니 해설 원고를 작성해서 자신(황충재)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흔쾌히 허락한 필자는 그때부터 수년간 황 챔프가 경영하는 피렌체 양복점 전화번호(515ㅡ5907)가 찍히면 속전속결로 원고를 작성 직접 전해드렸다. 그런 사연으로 인해 황충재 챔프와 인연을 맺은지도 어느덧 36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당시 황충재는 두곳의 사업체에서 천문학적(天文學的)인 수익을 올릴 때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황충재 챔프는 돈을 버는 것도 국가대표급이었지만 돈을 쓰는 것도 국가대표급이었다. 칠순을 목전에 둔 황충재 챔프가 과거의 실패를 디딤돌 삼아 다시금 옛 영화를 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신년에 즈음하여 소망하는 모든일 성취하는 한해가 되길 황충재 챔프에게 진심으로 바란다.
1978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속전속결로 창설된 한국체대 2기로 진학한 황충재는 박형춘 감독의 지도로 기량이 일취월장한다. 그리고 그해 4월에 벌어진 제2회 세계 선수권 선발전 우승과 5월에 아시아 청소년 대회(파키스탄)를 휩쓸며 2관왕을 달성한다. 황충재는 12월 방콕에서 개최된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
여기서부터 황충재와 황철순의 숨은 비화가 탄생한다. 당시 밴텀급에 선발된 황철순은 라이트 웰터급에 출전한 김인창과 룸메이트를 형성하고 있었다. 황철순과 김인창은 경흥 체육관 선후배지간으로 친형제같이 지내는 절친이었다. 그때 황충재가 매트리스를 품고 황철순과 김인창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방에 불쑥 나타난다. 이유는 단 하나 19세 소년 황충재는 선망의 대상이자 5년차 국가대표 간판 황철순과 동숙해야 금메달을 딸 것 같은 막연(漠然)한 생각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방에 기숙(寄宿)하던 황충재 김인창 황철순 3명은 나란히 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천금 같은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특히 황충재 김인창 이들의 금메달은 한국체대 창설후 처음으로 배출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이 금메달로 인해 복싱계 페스탈로치라 불리는 박형춘 한국체대 감독은 총장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았다.
그럼 신출(新出)내기 황충재가 겁 없이 대선배 황철순의 방을 왜 찾아갔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황철순 황충재 두 복서가 같은 창원 황씨여서 황철순이 평소에 친동생처럼 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황철순은 황충재가 금메달을 획득한 후 한국체대 선배들의 속칭 상급자가 하급자를 괴롭히는 <똥군기> 때문에 동국대학으로 옮기고 싶다는 말을 전하자 그는 곧바로 최재구 의원( 당시 공화당 소속의 동국대 총 동창회장) 자택이 있는 정릉 집을 찾았다.
최재구 의원은 1979년 5월 26일 황철순이 여자배구 국가대표 출신의 정순옥 여사와 엠버서더 호텔에서 백년가약을 맺을 때 주례를 섰던 인물이었다. 결국 황철순의 제안을 받아들인 최재구 의원에 의해 황충재는 1979년 동국대로 편입하였다. 여담이지만 프로복싱 최초의 2체급 챔피언 홍수환과도 국제대회 6관왕 황철순과 사이가 매우 각별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역시 홍수환의 모친 황농선 여사가 바로 창원 황씨였기 때문이다. 홍수환 챔프는 그 때문인지 동양 페더급 챔피언 황복수를 친동생처럼 끔찍이 아낀다. 이 사연도 역시 동양 페더급 챔피언 황복수가 창원 황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창원 황씨지만 둘이 접촉하면 상호 냉소적인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복서들이 있다. 얼마전 타계한 동양 웰터급 챔피언 황준석과 황충재가 주인공이다.
필자는 생전에 황준석에게 황충재와의 경기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황준석은 경기장에서 두차례 정도 황충재와 마주쳤다. 하지만 황준석은 살짝 목례만 하고 돌아섰다고 밝혔다. 여기서 알수 있듯이 황씨 성을 보유한 스타 복서들은 대부분 창원 황씨가 주류(主流)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1989년 88체육관에서 트레이너 생활할 때 황충재와 인연을 맺었다. 사연은 이렇다. 1990년 6월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문성길이 길베르토 로만(멕시코)과 1차 방어전을 앞둔 어느날 방송해설가로 변신한 황충재가 88 체육관을 찾았다. 목적은 한국에 원정온 도전자 길베르토 로만의 경력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황충재 위원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로만의 이력(履歷)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잠시후 황충재 위원은 필자에게 형이 나이트 클럽(젬마)과 양복점 (피렌체)를 운영하면서 바쁘게 활동하니 해설 원고를 작성해서 자신(황충재)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흔쾌히 허락한 필자는 그때부터 수년간 황 챔프가 경영하는 피렌체 양복점 전화번호(515ㅡ5907)가 찍히면 속전속결로 원고를 작성 직접 전해드렸다. 그런 사연으로 인해 황충재 챔프와 인연을 맺은지도 어느덧 36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당시 황충재는 두곳의 사업체에서 천문학적(天文學的)인 수익을 올릴 때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황충재 챔프는 돈을 버는 것도 국가대표급이었지만 돈을 쓰는 것도 국가대표급이었다. 칠순을 목전에 둔 황충재 챔프가 과거의 실패를 디딤돌 삼아 다시금 옛 영화를 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신년에 즈음하여 소망하는 모든일 성취하는 한해가 되길 황충재 챔프에게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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