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스포츠 컬럼] 세계 선수권 은메달 박덕규와 무승부를 기록한 고교생 복서 백달근
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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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얼마전 행사장에서 용산공고 재학시절 필자의 지도를 받던 현재 광진구 자양동에서 용인대 복싱체육관을 운영하는 백달근 관장을 만났다. 1974년 전남 목포태생의 백달근을 행사장에서 마주친 필자는 시골 냄새 풀풀 나는 이웃 동네인 무안 출신 박종팔 챔프에게 인사를 시켜드렸다. 1989년 달근이는 WBA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 챔프의 모교인 한강중학교 3학년 때 전국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다.
그리고 필자가 근무하는 용산공고에 1990년 2월 최요삼의 1년 후배로 입학한다. 왼손잡이 복서 백달근 그해 5월 김명복배 8강 (LF급)에서 김대준(순천 금당고)을 판정으로 꺾고 돌풍을 일으키며 동메달을 획득 주목을 받는다. 김대준은 차관철을 꺾은 실력이 검증된 복서였다. 1991년 8월 수원에서 개최된 전국 회장배(플라이급) 대회에 출전한 달근이는 5연승(3KO)을 기록하며 대회 최우수복서(MVP) 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그해 전국체전 선발전에 출전한 달근이의 결승전 상대는 훗날 WBC 투타임 페더급 챔피언에 빛나는 1년 선배 지인진 (당곡고) 이었다. 이대결에서 달근이는 지인진과 초접전을 벌였지만 3ㅡ2 판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지인진으로선 식겁(食怯)한 일전이었다. 졸업반인 1992년 초봄에 황철순 리라공고 감독이 선수단을 이끌고 필자가 근무하는 영등포에 위치한 88체육관을 방문하였다. 백달근의 스파링상대는 박정필 이었다. 리라공고 박정필은 백달근에게 일방적으로 난타를 당한다. 스파링이 끝나자 황철순 감독은 내려오는 박정필을 향해 엎드린 자세를 취하게 하고 몽둥이에 불이 붙도록 박정필을 때린다. 스파링이 끝나고 복싱계 마키아벨리 황철순 감독이 소리 없이 떠난다. 그때서야 필자는 아차 ! 하면서 황철순 감독의 원정 스파링이 치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임을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결국 스파링을 통해 황철순 감독에게 전력이 노출된 달근이는 황 감독의 뇌리에 경계 대상 1호로 찍힌다. 그리고 다가오는 전국체전 선발전에 백달근을 제거(?) 하기 위해 치밀하게 대비한다. 예상대로 달근이는 전국체전 밴텀급 선발전 결승에서 연습경기 때처럼 박정필에게 우세한 경기를 펼친다. 그러나 사전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영민 배정진 심판을 비롯 평소 황철순 감독과 친분이 두터운 심판진을 차례로 포진시켜 놓은 상태에서 경기를 펼친다. 이 경기는 KO승이 아니면 절대로 이길수 없는 시합 구조였다. 결국 달근이는 판정패를 당한다. 여담이지만 박정필 변정일 등은 은사인 황철순 감독이 창작 해낸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용인대 진학을 눈앞에 둔 달근이는 1993년 2월9일 제7회 세계 선수권 대회 선발전에 출전한다.
선발전 16강 전에서 91 호주 세계선수권대회(페더급) 은메달 박덕규(원광대)_와 맞붙는다. 3회까지 달근이가 유효타를 많이 명중시켜 3회 공이 울렸을 때 이긴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14ㅡ14 동점이 나온다. 잠시 후 종합점수에서 뒤져 달근이는 아깝게 고배를 또 마셨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기억하는 백달근의 복싱 스토리다. 그리고 대학(용인대)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그가 15년전 어느날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하여 재회하였다.
그때 달근이는 2009년 결혼을 하고 일산시 모처에서 주점(酒店)을 운영하면서 경기 호황과 맞물리며 집을 3채나 장만하였을 때였다. 그러나 그후 주점 사업을 정리하고 부동산 사업에 투자한 달근이는 경험 부족으로 투자금 전부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낭패(狼狽)를 맛본다. 결국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 2016년 광진구 자양동에 복싱체육관을 오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체육관 운영하면서 발생된 수입으로는 3식구가 넉넉하게 생활할 수는 없었다. 3년후 그는 삶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중대한 결심을 한다.
2019년 어느날 광진구청 청소과 직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시험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하고 내가 만든다는 신념이 그를 강하게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얼마후 그는 합격증을 받아 든다. 그리고 곧바로 광진구청 청소과 환경 공무관으로 임명받아 새벽 5시에 광진구청으로 출근 오후 3시에 청소과 업무를 마친다. 그리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곧바로 체육관에 직행 오후 10시까지 관원들을 지도하다가 퇴근한다. 그렇게 하루 4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면서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체육관 운영과 광진구청 청소과 업무를 6년간 쉼 없이 병행한 결과 현재 6천5백의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체육관 수익까지 합하면 1억에 육박한다. 이런 그를 향해 신일주 광진구청 청소과 지부장은 전형적인 순박함과 과묵한 행동으로 매사에 일처리를 군말 없이 잘해 내는 구청 청소과 살림꾼이라고 호평했다. 사실 달근이도 일을 시작하면서 하루에도 수차례 씩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힘든 길을 걷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 싶은 소박한 꿈 때문이었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가장 따스한 가슴을 간직한 의지의 한국인 백달근 그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기대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그리고 필자가 근무하는 용산공고에 1990년 2월 최요삼의 1년 후배로 입학한다. 왼손잡이 복서 백달근 그해 5월 김명복배 8강 (LF급)에서 김대준(순천 금당고)을 판정으로 꺾고 돌풍을 일으키며 동메달을 획득 주목을 받는다. 김대준은 차관철을 꺾은 실력이 검증된 복서였다. 1991년 8월 수원에서 개최된 전국 회장배(플라이급) 대회에 출전한 달근이는 5연승(3KO)을 기록하며 대회 최우수복서(MVP) 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그해 전국체전 선발전에 출전한 달근이의 결승전 상대는 훗날 WBC 투타임 페더급 챔피언에 빛나는 1년 선배 지인진 (당곡고) 이었다. 이대결에서 달근이는 지인진과 초접전을 벌였지만 3ㅡ2 판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지인진으로선 식겁(食怯)한 일전이었다. 졸업반인 1992년 초봄에 황철순 리라공고 감독이 선수단을 이끌고 필자가 근무하는 영등포에 위치한 88체육관을 방문하였다. 백달근의 스파링상대는 박정필 이었다. 리라공고 박정필은 백달근에게 일방적으로 난타를 당한다. 스파링이 끝나자 황철순 감독은 내려오는 박정필을 향해 엎드린 자세를 취하게 하고 몽둥이에 불이 붙도록 박정필을 때린다. 스파링이 끝나고 복싱계 마키아벨리 황철순 감독이 소리 없이 떠난다. 그때서야 필자는 아차 ! 하면서 황철순 감독의 원정 스파링이 치밀하게 계획된 시나리오임을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결국 스파링을 통해 황철순 감독에게 전력이 노출된 달근이는 황 감독의 뇌리에 경계 대상 1호로 찍힌다. 그리고 다가오는 전국체전 선발전에 백달근을 제거(?) 하기 위해 치밀하게 대비한다. 예상대로 달근이는 전국체전 밴텀급 선발전 결승에서 연습경기 때처럼 박정필에게 우세한 경기를 펼친다. 그러나 사전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영민 배정진 심판을 비롯 평소 황철순 감독과 친분이 두터운 심판진을 차례로 포진시켜 놓은 상태에서 경기를 펼친다. 이 경기는 KO승이 아니면 절대로 이길수 없는 시합 구조였다. 결국 달근이는 판정패를 당한다. 여담이지만 박정필 변정일 등은 은사인 황철순 감독이 창작 해낸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용인대 진학을 눈앞에 둔 달근이는 1993년 2월9일 제7회 세계 선수권 대회 선발전에 출전한다.
선발전 16강 전에서 91 호주 세계선수권대회(페더급) 은메달 박덕규(원광대)_와 맞붙는다. 3회까지 달근이가 유효타를 많이 명중시켜 3회 공이 울렸을 때 이긴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14ㅡ14 동점이 나온다. 잠시 후 종합점수에서 뒤져 달근이는 아깝게 고배를 또 마셨다. 여기까지가 필자가 기억하는 백달근의 복싱 스토리다. 그리고 대학(용인대)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그가 15년전 어느날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하여 재회하였다.
그때 달근이는 2009년 결혼을 하고 일산시 모처에서 주점(酒店)을 운영하면서 경기 호황과 맞물리며 집을 3채나 장만하였을 때였다. 그러나 그후 주점 사업을 정리하고 부동산 사업에 투자한 달근이는 경험 부족으로 투자금 전부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낭패(狼狽)를 맛본다. 결국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 2016년 광진구 자양동에 복싱체육관을 오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체육관 운영하면서 발생된 수입으로는 3식구가 넉넉하게 생활할 수는 없었다. 3년후 그는 삶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중대한 결심을 한다.
2019년 어느날 광진구청 청소과 직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시험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하고 내가 만든다는 신념이 그를 강하게 움직인 것이다. 그리고 얼마후 그는 합격증을 받아 든다. 그리고 곧바로 광진구청 청소과 환경 공무관으로 임명받아 새벽 5시에 광진구청으로 출근 오후 3시에 청소과 업무를 마친다. 그리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곧바로 체육관에 직행 오후 10시까지 관원들을 지도하다가 퇴근한다. 그렇게 하루 4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면서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체육관 운영과 광진구청 청소과 업무를 6년간 쉼 없이 병행한 결과 현재 6천5백의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체육관 수익까지 합하면 1억에 육박한다. 이런 그를 향해 신일주 광진구청 청소과 지부장은 전형적인 순박함과 과묵한 행동으로 매사에 일처리를 군말 없이 잘해 내는 구청 청소과 살림꾼이라고 호평했다. 사실 달근이도 일을 시작하면서 하루에도 수차례 씩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힘든 길을 걷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 싶은 소박한 꿈 때문이었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가장 따스한 가슴을 간직한 의지의 한국인 백달근 그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기대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