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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헤비급 챔피언 마이클 무어를 KO로 잡은 한국인

26.01.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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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7시쯤 한 통의 전화벨이 울린다. 전 경북체고 복싱 감독 곽 귀 근 선생이었다. 둔촌시장 근처에서 가족들과 함께 만찬을 하려고 왔다가 체육관 간판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어 필자와 오랜만에 상봉했다.




곽 선생은 수년전 경북체고 복싱부 감독직을 퇴임하고 울산에서 천마 복싱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공교럽게도 따님이 출가하여 강동구에 신혼집(APT)을 마련하여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내과 의사인 사위와 손자 그리고 곽 선생 내외분과 함께 온 가족이 이곳에 집결 만찬을 했다.

만찬을 하던중 인근에서 요식업(料食業)을 운영하는 안상우 대표를 초빙 곽 선생에게 인사시켰다. 복싱 대통령 장정구와 절친인 안상우 대표는 스포츠 컬럼 애독자로 아마복싱 살아있는 전설 곽 선생에 대해 필자의 본 컬럼을 통해 화려한 이력을 사전에 숙지(熟知)한 복싱매니아다.




1961년 2월 대구태생의 곽귀근은 1978년 경북체육고에 입학 1979년 신인 시절 청소년 대표 윤영복(경희대) 국가대표 주항선 (조선대)에 패하면서 성장통을 겪으며 진일보(進一步)한다.

1980년 잠재력이 폭팔 5월에 개최된 제4회 김명복 박사배 10월에 개최된 제61회 전국체전을 석권 2관왕을 달성한다.

1981년 경북 사범대학에 진학한 그는 1983년 제13회 대통령배와 1986년 제67회 전국체전에서 우승한후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1987년 올림픽 1차 선발전과 아시아 챌린져 대회를 석권한다.

그리고 제5회 유고 월드컵(미들급)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 국위를 선양한다. 이중 하이라이트는 1987년 4월에 벌어진 한미국가대항전에서 미국 국가대표 마이클 무어와 대결이었다.

1회 들어오는 21살의 혈기 왕성한 무어에게 재대 (상무) 말년의 27살의 노장 곽귀근 은 일격을 날린다. 그러자 트럭에 부딪치는 충격을 받은 무어는 그대로 링 바닥에 실신 KO패를 당한다. 




이 대결을 끝으로 1988년 프로에 전향한 무어는 1994년 그 유명한 홀리필드를 꺽고 WBA. IBF 헤비급 세계 정상에 올라 곽귀근에 KO패한 쓰라린 아픔을 달랬다. 이후에 벌어진 88서울올림픽 국내 선발전에서 곽귀근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올림픽 대표 꿈을 접고 1987년 6월 모교인 경북체고 교사로 부임하면서 그의 지도자 인생이 시작된다.

곽귀근 그는 2021년 2월 퇴임할 때까지 33년간 복싱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첫 작품으로 90년 서울컵 우승과 MVP. 91 세계 선수권 은메달. 92 바로 셀로나 올림픽 대표 박덕규(페더급)를 배출했다.

1972년 경북 예천 출신의 박덕규는 야구계로 비유하면 <류현진급>이었다. 박덕규는 쉴새 없이 상대를 몰아붙이는 투지와 근성을 보유한 강력한 러씽 파이터 였다.




이를 발판으로 곽귀근 사단의 경북체고는 국내 최초로 세계 선수권 2회 연속 메달 리스트 신종훈, 올림픽 대표 출신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김기석 등 트로이카를 위시하여 배효조 최진우 권기덕 이광중 진정제 유지윤 엄재열등 수많은 복서들을 탄생시키면서 무적함대 경북체고 위용을 과시했다.

곽귀근 그가 각종 전국대회에서 뽑아낸 금메달 203개 포함 도합(都合) 537개의 메달을 획득 학원 스포츠계를 평정 복싱계 징키스칸 이란 닉 네임을 얻었다.

강함(채찍)과 부드러움(당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창출 해낸 결실의 탑이었다.

1989년 아마복싱계에 지도자로 입성한 필자는 현역 지도자 시절 무적함대 곽귀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경북체고에 4전 4패를 기록했다.

4연패는 씨름선수 강호동이 이봉걸에 패한 숫자와 동일하다. 1992년 캐나다에서 개최되는 세계 청소년대회(LF) 결승에서 필자가 지휘봉을 잡은 용산공고 최준욱이 경북체고 유지윤에 판정패를 당했다.

 그리고 그해 전국체전 준결승에서도 유지윤에 또다시 고배를 마시며 연패를 당했다. 1994년 용산공고를 졸업하고 한국체대에 진학한 최준욱은 그해 7월 러시아에서 개최된 94 굿월 게임 은메달 1997년 동아시아 대회(중국)에서 금메달을 획득 유지윤에 2연패를 당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했다.

1998년 서울체고에 입성한 필자는 그해 김명복배 (LF급) 결승에서 국나남이 경북체고 김기석에 완패를 당했다.




이어 김기석이 불참한 가운데 펼쳐진 학생선수권 대회에서 국나남은 이옥성(경남체고)을 꺾고 우승과 함께 최우 선수상(MVP)을 수상했다. 국나남은 체고 대항 결승에서 이옥성(95. 세계 선수권자)에 또다시 5ㅡ4 판정으로 꺾고 2관왕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해 전국체전 준결승에서 국나남은 경북 대표 김기석에 9ㅡ5 판정패를 당하면서 분루를 삼킨다.

1980년 9월 1일생인 컴퓨터 복서 김기석은 주먹의 명중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정확한 왼손잡이 복서였다. 결국 서울체고 국나남은 김기석이 대학(시립대)에 진학하자 1999년 무주공산(無主空山)에 입성 학원스포츠를 평정 3관왕을 달성했다.

왼손잡이 복서 김기석의 복싱 스킬은 야구계에 <선동렬급>이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2회 연속 출전한 김기석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8년만에)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7년도에 김기석은 서울시청에서 영주시청으로 이적할 때 6천만 원의 연봉을 받아 고액 연봉 시대 서문을 열었다.

곽귀근 감독의 3번째 작품은 사상 최초로 세계 선수권 2회 연속 메달을 획득하며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월드 스타 신종훈이다.

발레리나처럼 율동적인 몸놀림에서 독침처럼 날리는 정교한 펀치를 자랑하는 그의 복싱 기량은 야구에 <박찬호 급>이었다. 2009년 밀라노 세계선수권 동메달 2011년 바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월드 스타 신종훈은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LF)급 에서 12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국내에서 최초로 억대 연봉을 돌파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2012년 런던올림픽(LF급)에서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지만 메달권에서 탈락한 점이 옥에티였다.

이렇듯 슈퍼스타 3명을 포함 수 많은 명 복서를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쉼없이 배출 국위를 선양한 곽귀근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곽귀근 이 조련하여 성장시킨 박덕규 김기석 신종훈은 당시 국내 아마 츄 어 계에서 고려청자 같은 진귀한 (珍貴)한 존재였다. 시간이라는 모래밭 위에 선명한 발자욱을 남기고 퇴장한 위대한(Great) 지도자 곽귀근 그의 인생 3막이 화려하게 펼쳐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