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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우, 1985년 12월8일 프로복싱 역대 13번째 세계 챔프에 오르다

25.10.2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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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유명우 챔프(오른쪽)와 필자.

며칠 전 용인대 출신 체육관 선배 한 분이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올해 12월13일 용인대 송년회(送年會)가 경기도 모처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5년 12월13일 발생한 지난날 악몽이 스쳐간다. 40년 전 그날은 '검은 금요일'(Black Friday)이었다.

바로 그날은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와다나베 지로(일본)와 도전자 윤석환의 타이틀전이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날이다. 필자는 그날 언더 카드로 출전해 아마 프로 통틀어 46전 만에 첫 KO패를 당하고, 그 경기를 끝으로 복싱을 접었다.

필자의 경기가 열리기 5일 전인 1983년 12월8일 WBA J. 플라이급 타이틀전이 서울에서 펼쳐졌다. 그때 도전자 유명우가 챔피언 조이 올리버(미국)를 꺾고 세계 정상에 올랐다.

5일 간격으로 경기가 열려 한 선수는 세계 정상에 올랐고 또한 선수는 모든 걸 접고 쓸쓸히 낙향해 묘한 대조를 이루었던 40년 전 12월이었다.


유명우(오른쪽)가 멕사코 살라자르에게 오른손 훅을 휘두르고 있다.

사실 그때 그 시절 유명우의 정상 등극은 장정구 챔프 홀로 외로이 지켜온 한국 프로복싱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장정구는 8차 방어의 벽을 넘고 있었다. 1964년 1월 서울태생으로 유소년기에 축구선수가 되는게 꿈이었던 유명우는 서울 삼성초 3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가 열정적으로 수련했다.

하지만 1977년 한강중에 진학하면서 복싱으로 전환했다. 그는 대원체육관(봉천동)을 찾아 샌드백을 두들기며 1979년 전국 학생 신인대회에 출전했다.

1980년 3월 유명우는 인천체고에 진학한다. 당시 유명우를 지도한 은사이신 송호철 인천체고 감독은 필자와 통화에서 복싱 신입생으로 입학한 자그마한 키의 유명우는 특별한 기술이 없는 평범한 복서였다고 회고했다.

또한 스타일도 아마추어 스타일과 거리가 먼 크라우칭 스타일(Crouching style)이어서 정통파 자세로 교정하려 노력을 기울였지만 쉽게 고쳐지질 않았다고 돌아봤다.

결국 유명우는 아마추어 대회에 2~3차례 출전했지만 1승3패의 평범한 전적을 남기고 1982년 3월 프로로 전향했다. 유명우는 프로 데뷔 4개월 만인 1982년 7월 제2회 전국 신인대회에 출전해 플라이급에서 우승과 함께 감투상을 받았다.


숙적이자 절친인 안래기(오른쪽)과 유명우 챔프.

유명우는 1983년 3월 안래기, 12월에 임하식, 1984년 5월 정비원 등 국내 최정상급 복서 3명을 차례로 판정으로 잡고 동아체육관 (김현치)으로 이적한다.

그 무렵 필자는 유명우를 비롯해 안래기, 정비원, 허준, 박광구, 최응산 등과 또 아마추어 복서로는 오종서, 서정수 등과 스파링을 벌였다. 하지만 유명우는 이들보다 연타력은 좋았지만 특별하게 인상에 남을 만한 액션은 없었다.

그러나 세계 타이틀 도전을 3개월 앞둔 9월8일 손오공과의 WBA J.플라이급 도전자 결정전부터 유명우는 환골탈태 (換骨奪胎) 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다.

1985년 12월8일 대망의 WBA J. 플라이급 타이틀을 놓고 챔피언 조이 올리버(미국)와 도전자 유명우가 세계 타이틀전을 벌였다.

이 대결을 벌일 때 군인 신분(수도경비사령부)이었던 유명우는 신장이 12cm나 큰 올리버를 상대로 초반부터 군인 정신을 발휘해 맹렬하게 밀어부쳤다. 하지만 견고한 디펜스와 송곳처럼 날카로운 잽으로 저항하는 챔피언 올리버와 팽팽한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다. 결국 유명우가 2ㅡ1 판정승을 거두고 정상에 올랐다.


챔피언 올리버(왼쪽)를 저돌적으로 공격하는 유명우.

이를 발판으로 유명우는 한국 프로복싱 사상 초대 챔피언 김기수를 시발로 홍수환, 유제두, 염동균, 홍수환, 김성준, 김상현, 박찬희, 김태식, 김철호, 김환진, 장정구에 이어 역대 13번째 챔피언으로 등극한다.

1989년 12월 13차 방어에 성공한 유명우는 축구 김주성·최순호, 야구 최동원·선동열, 씨름 이만기 등을 따돌리고 프로선수 종합 소득 1위를 차지한다.

1991년 WBA가 선정한 올해의 복서로 선정된 유명우는 1993년 7월 통산 18차 방어의 대업을 이룩하고 39전 38승(14KO) 1패의 전적을 남기고 명예롭게 은퇴한다.

하나 아쉬운 점은 1991년 12월17일 이오카(일본)와 벌인 18차방어전에서 패하지만 않았다면 19차 방어에 성공한 WBA J.밴텀급 챔피언 카오사이 갤럭시(태국)의 아시아 최다 방어기록을 넘어설 수 있었는데 그 점이 아쉬웠다.

통산 39전 중 20차례의 세계 타이틀전에서 19승(10KO) 1패를 기록한 유명우는 2012년 장정구 챔프에 이어 2번째로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IBHOP)에 입성함으로써 한국 복싱의 위상을 드높였다. 현재 유명우는 개인사업과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버팔로 프로모션도 운영하는 프로모터로 활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