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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서 지망생에서 가수로 변신, '인생은 미완성'을 부른 가수 이진관

25.08.06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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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천 유원대 복싱 이동포 감독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얼마 전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한 4곡을 취입(吹入)할 가수를 소개 시켜 달라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곧바로 80년대 중반 <인생은 미완성>이란 히트곡을 작곡한 이진관 선배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이동포 감독과 함께 지난 주말 이진관의 스튜디오가 있는 성남시 태평 3동으로 향했다. 이동포 감독의 곡을 받아본 이진관 은 역시 예체능계에도 재능이 많은 복싱인이라 평하면서 그의 작품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가수 픽업 문제는 진지하게 검토한 후 추후에 수소문해서 연락을 드리기로 합의했다. 이진관은 수년전 필자의 용인대 선배 임동술의 소개로 알게 되어 그동안 여러 차례 필자의 체육관을 왕림 호형호제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1960년 12월 익산태생의 임동술은 전북체고 재학시절 김태우 함덕원(이상 동국대)과 함께 레슬링계 <헤라클레스>란 닉네임 으로 중량급의 트로이카를 형성한 선수였다.

임동술 그가 태어난 익산시 황등면은 전북 순창 출신의 임종수 선생이 학창 시절 추억을 담아 작사. 작곡하고 나훈아가 부른 고향 역의 발원지(發源地)이다.

이진관은 1958년 10월 전북 군산시 옥구군 서수면 출신이다. 군산시 외곽에 위치한 옥구군은 탁류를 저술한 근대문학의 거장(巨匠) 백릉 채만식. 고건 국무총리의 선친이자 서울대 철학과 교수 고형곤. 우주최강 동안이라 불리는 93세의 이길려 가천대학 총장. 임진왜란때 선조의 호위무사로 발탁되어 안위를 책임진 최호 장군. 1982년 11월 머나먼 타국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복싱 선수 김득구 등이 현재는 군산시에 편입된 옥구군 출신의 명사들이다. 특히 옥구군 회현면은 사법고시 합격생 10명을 배출 고시마을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진관은 임피 중학 시절 전도유망(前途有望)한 씨름선수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명문 이리 농고 특기생으로 입학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리 농고는 1984년 LA 올림픽 레슬링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유인탁(주택공사)의 모교이다. 그러나 평소 그가 꿈꾸던 복서로 입문하기 위해 상경 체육관에서 복싱을 수련한다. 이진관의 절친이자 1985년 제9회 MBC 대학 가요제에서 <저 바다에 누워> 란 곡으로 대상을 수상한 높은음자리 김장수는 언젠가 필자와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진관 은 3형제(3남 5녀)중 막내로 3형제 모두 천부적으로 운동신경이 탁월한 우량 DNA를 보유한 혈통 좋은 가문이라고...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인해 1980년 가요계에 데뷔 1983년 풍선을 발표한다. 그러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못하면서 5년간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활동한다.




그러던 1985년 어느날 교도소에서 사형수를 담당한 교도관으로 근무한 작사가 김지평씨가 재소자들의 생활을 지켜보면서 영감(靈感)을 받아 적은 <인생은 미완성> 이란 가사를 받는다. 그리고 이진관이 3시간 만에 가사에 멜로디를 곱게 입혀 작곡 드디어 <인생은 미완성> 이란곡이 탄생한다.

이곡은 1985년 6월 가요톱텐에서 한마음의 갯바위. 해바라기의 모두가 사랑이예요. 나미의 빙글빙글. 유혹하지 말아요. 김원중의 바위섬. 조용필의 어제 그리고 오늘. 구창모 희나리. 이선희 아 옛날이여. 이동원 이별 노래. 최진희 사랑의 미로 등 불멸의 명곡들을 순차적으로 후진(後進)시키면서 3주 연속 가요톱텐 1위에 오른다. 영국의 계관시인 바이런의 표현을 빌리면 이진관은 하룻밤 자고 나니 갑자기 유명해졌다. 이곡은 70년대초 송창식 윤형주 양희은 등 통키타 그룹이 사회비판이나 풍자를 노래한 것과 판이하게 달랐다.




이진관의 <인생은 미완성>이란 곡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자연스런 정서를 담은 서정적인 멜로디를 음유(吟遊)시인처럼 이진관이 차분하게 불러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는 가요톱텐에서 3주 연속 1위에 오른다. 5년간 무명 가수로 생활하면서 숙성된 잠재력이 한방에 폭팔 노래 한곡으로 그는 촌놈 딱지를 떼어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의 그림자가 필연적으로 따라 붙듯이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불청객이 방문한다. 그 결과 이진관 은 후유증으로 매니져 와 결별하는 진통을 겪는다. 가수의 노랫말이 가수의 운명을 지배한다는 가요계의 속설이 있다.

이진관은 그후 <부르다 멎는 노래>처럼 가요계 활동을 전면 중단한다. 그후 얼마간의 은둔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이진관은 노래교실을 오픈 서수남 현미와 함께 노래교실 3대 천황에 군림하며 호황을 누린다. 노래 교실을 운영하면서 그가 무명 가수 시절 사랑하는 연인과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을 그린 오늘처럼 을 비롯 인생 뭐있어. 영자만 보여요. 줄 듯 말 듯. 등 생활 속에서 소재를 얻어 직접 작사 작곡 창작의 열정을 불태웠다.




이진관을 상징하는 최대 히트곡 인생은 미완성이란 곡이 워낙 임팩트가 강한 이미지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곡 들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그래도 그는 곱게 쓰고 아름답게 부르면서 미완성의 단계에서 완성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 이진관 과 담화를 나누면서 그에게 가장 존경하는 가수를 묻자 그는 대답 대신 헨드폰에 저장된 선배 가수 이름을 보여준다. 그가 저장한 헨드폰 인명 목록에는 존경하는 남진 선배님이라고 적혀있었다. 그 문자를 보는 순간 문득 15년 전 장정구 챔프가 근무 (?) 했던 역삼동(간장 게장) 음식점에서 발생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당시 그곳을 방문한 필자 일행 중에 멀리 김포에서 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앞에서 남진 선생이 부른 70년대 히트곡 김포가도 불렀다. 노래를 마치자 갑자기 복싱 대통령 장정구 챔프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몇마디 대화를 주고 받더니 필자에게 헨드폰을 건낸다.




주인공은 가요계 거목 남진 선생이었다. 필자는 장 챔프의 헨드폰을 들고 김포가도를 다시한번 진지하게 불렀다. 그러자 남진 선생이 아따 동상 노래 겁나게 잘 부른당께 하면서 격려를 해 주었다.

그때 필자는 소소한 우리네 일상에서 일반인들과 격의(隔意)없이 대화를 나누는 그분의 인품에 감동 받았다. 그 후 행사장에서 남진 선생을 뵙고 인사 드리면서 1946년 9월 목포태생 이시죠 하고 묻자 실제는 1945년생이라고 미소를 머금고 다정하게 답해주시는 그분 과의 지난 만남이 떠올랐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이진관 은 오는 10월 31일 건국대에서 콘서트를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요즘 행사 준비 관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필자는 이진관 에게 10월 31일 그날은 희극인 임하룡씨(1952년) 가 태어난 날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마르틴 루터(1517년)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의미 있는 날이라 말했다.

그러자 이진관은 동생 그날이 하룡이 형 생일이야? 하면서 반문한다. 직감적으로 연예계에 종사하는 분들은 상호 간에 교류하면서 친분이 있어 보였다.

그렇게 3시간에 걸쳐 인텨뷰를 겸한 담화를 마치고 필자는 이동포 유원대 감독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10월의 마지막 밤에 개최되는 이진관 콘서트에 가요계 팬들의 많은 관심과 참석을 바라면서 이번 공연을 계기로 가수 이진관이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새롭게 거듭 태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