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스포츠 칼럼] 2025년 천안시장배 복싱대회에서 만난 사람들
2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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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의창=조영섭 기자] 지난 7월 26일 (토) 오전 10시 천안시 청소년 복합커뮤니티 센타 특설 링에서 제8회 천안시장배 대회가 개최되었다. 현장에서 필자는 천안시에서 <충의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는 복싱계의 거스 다마토로 불리는 천안복싱의 대부(代父) 최한기 감독을 위시해서 Y.T 경호업체를 운영하는 김영태 회장 SK 에코 플랜트 지진형 부장 천안복싱 협회 임성태 회장을 순차적으로 만났다. 사실 경기장에는 사전에 예상한 일이었지만 눈에 익은 복싱인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신진세력들로 세대교체가 되어있었다. 이번 대회는 총 116게임이 연령대별로 순차적 으로 펼쳐진 대회였다. 필자는 합기도 6단 유단자로 천안에서 합기도 체육관과 격투기 체육관을 10년간 운영한 <천안의 원로 주먹 김영태 회장>과 독대하면서 천안복싱 이모저모를 알아보았다.
현재 천안복싱협회 전무를 겸직하고 있는 김연집 관장이 운영하는 UP 체육관에서 복싱을 수련하고 있는 김영태 회장은 1960년 천안태생이다. 대전 복싱협회 양길모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김 회장은 서두에 김 관장은 천안에서 22년째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천안복싱의 안방마님 역활을 하는 살림꾼 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관원들 미트를 빠짐없이 대주면서 매우 성실하게 지도하는 관장이라고 첨부했다. 김연집 관장의 충남체고 후배이자 국가대표 출신의 최양선은 차세대 천안 아산복싱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젊은 지도자라고 언급했다. 김연집 최양선 관장은 모두 충남체고 출신이다.
이들을 지도한 스승이 김왕순 현 대전체육회 차장이다. 김왕순 차장은 1993년 7월 충남체고에 지도자로 입성 김연집 최양선을 비롯 김태규 박권영 박기표 김유신 김용찬 백종섭등 명선수를 연달아 배출 3년간 20개의 전국체전 메달을 창출한 명장이다. 돋보기로 빛을 모으면 강력한 에너지가 발생 불이 만들어지듯이 김왕순 차장도 그와 같은 몰입(沒入) 과정을 통해 우수선수들이 배출됨을 실증한 지도자다. 그런 흔들임 없는 철학을 발판으로 1997년 대전 동산중에서 지휘봉을 잡은 김왕순은 8년 동안 소년체전에서 12개의 금메달을 획득 국내 최다(소년체전) 금메달 획득한 기록 보유자다. 물도 바위와 절벽을 만나야 폭포가 되고 석양도 구름을 만나야 붉은 노을이 펼쳐지듯이 선수는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 도 인생 성공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편 김영태 회장은 이번 대회를 주최한 천안시 복싱협회 임성태 회장은 예의 바르고 겸손한 회장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번 대회에 30명의 대규모의 선수단을 출전시킬 정도로 체육관 운영을 탄력적으로 잘 운영하는 협회장이라고 평했다. 1972년 충남 부여태생의 임성태(평택 청담고) 회장은 1989년 9월 전국 회장배 선수권 플라이급 결승에서 이해준(순천 금당고)에 판정패 은메달을 획득한 엘리트 복서다. 1991년 1월 88 프로모션 소속으로 프로 대뷔전을 펼친 임성태는 2차전부터는 필자가 그의 사범 역활을 하면서 2년간 지도하였다. 그 당시 필자는 최요삼 지인진 임성태 3명의 유망주 복서의 트레이닝를 전담했었다. 3명의 복서중 최요삼 지인진 의 1년 선배 임성태는 이들에 비해 복싱 감각이 단연 발군(拔群)이었다. 임성태 복싱은 펀치력 부족이 다소 아쉬웠지만 스피드 센스 스킬 스태미너 등 복싱의 4S를 완벽하게 보유한 스마트한 복서였다.
임성태 회장은 1999년 4월 5일 멜초 가르시아 전을 끝으로 27세에 링을 떠날 때 21전 19승(3KO) 2무를 기록 WBA 플라이급 4위에 랭크 된 복서였다. 참고로 한국 프로복싱사상 20전을 넘긴 세계 랭커 중 무패로 은퇴한 복서는 임성태와 권철 단 두명이다. 김영태 회장은 SK 에코 플랜트 지진형에 대해 근래에 보기드문 의협심(義俠心) 강한 정의로운 후배라고 말하면서 그가 스승인 최한기 관장에게 보여준 제자 된 도리를 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 모든 복싱인 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모범(模範) 사례라고 밝혔다. 1989년 지진형은 대천고 재학시절 폭팔적인 파괴력을 주무기로 전용호 김동철 박상주와 연합전선을 펼치며 대천고 종합우승의 주력 멤버로 활약 한국체대행을 예약한 슬러거였다. 그때 대천고 복싱부를 전담한 스승이 바로 최한기 충의대 감독이었다. 김영태 회장은 요즘 세태에서 학교 혹은 체육관을 벗어나면 사제지간의 연이 끊어지는게 사회적인 통념(通念)이다. 그러나 지부장은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뛰어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심을 잃지 않고 스승(최한기)을 공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의인 중에 의인이 바로 지진형 부장이라고 역설하였다.
30년에 걸쳐 천안에 위치한 소년원 교도소인 <충의대> 감독을 역임한 최한기 감독과 경기중 밖에 나가 필자와 담화를 나누었다. 1957년 천안태생의 최 감독은 이제 윤구 형 (동아체육관 김윤구 사범)과 준석(황준석)이도 우리 곁을 떠나면서 허탈한 심정이라고 회상하면서 이젠 나도 조만간 아들에게 체육관을 물러주고 야인(野人)으로 돌아갈 것이라 전했다. 최한기 감독의 2년 선배 김윤구 관장은 1955년 청도 출신으로 80년대 전후하여 동아체육관 트레이너로 활약하면서 김현치 관장 휘하에서 30년을 근무하면서 유명우 박종팔 유병래 김환진 오민근 서성인 황준석 최재원 김득구 이상봉등 수많은 명 복서들을 배출한 지도자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19일 경기도 군포시 남천병원에서 위암 투병 끝에 향년 69세로 타계했다. 최한기 감독은 1979년 7월 김득구와 일전을 펼칠 때 김득구 트레이너 김윤구 사범과 운명처럼 만났다가 숙명처럼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그의 제자 황준석도 지난 6월 29일 64세를 일기로 하늘에 별이 되었다. 이러한 침울한 분위기에 편승한 올해 68세인 최한기 감독도 복싱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체육관 생활을 정리 할 뜻을 굳힌 듯 보였다. 잔디밭에 앉아계시는 초연한 모습의 최한기 감독을 지켜보면서 그분의 심정을 노래하는 듯한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린 원천석의 시한수가 떠오른다. 흥망(興亡)이 유수 하니 만월대도 주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쳐시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논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이 시조는 고려 유신 원천석이 고려가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진 애닲은 심정과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한 내용이다.
이 시 내용처럼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한평생 복싱계에 몸담은 최한기 감독도 물위에 뜬 것은 아무리 큰 배라 할지라도 언젠가 뒤집어 질때가 있고 천리를 달리는 적토마라 할지라도 언젠가 멈출 때가 있다는 고사처럼 이제 최한기 감독도 종착역(終着驛)에 시나브로 다가 셨다. 그리고 필자도 그분의 전철을 밟으며 예정된 시간표대로 머지않아 떠날 것이다. 중국 속담에 장강(長江)의 앞 물은 뒷물에 밀려간다는 말처럼 우리 인생도 순리대로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이날 지진형 S K 부장과 필자는 상호 간에 바쁜 스케줄로 인해 2시간 후 체육관을 벗어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곧바로 상경하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차고 소중한 여정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천안복싱 협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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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의창=조영섭 기자] 지난 7월 26일 (토) 오전 10시 천안시 청소년 복합커뮤니티 센타 특설 링에서 제8회 천안시장배 대회가 개최되었다. 현장에서 필자는 천안시에서 <충의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는 복싱계의 거스 다마토로 불리는 천안복싱의 대부(代父) 최한기 감독을 위시해서 Y.T 경호업체를 운영하는 김영태 회장 SK 에코 플랜트 지진형 부장 천안복싱 협회 임성태 회장을 순차적으로 만났다. 사실 경기장에는 사전에 예상한 일이었지만 눈에 익은 복싱인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신진세력들로 세대교체가 되어있었다. 이번 대회는 총 116게임이 연령대별로 순차적 으로 펼쳐진 대회였다. 필자는 합기도 6단 유단자로 천안에서 합기도 체육관과 격투기 체육관을 10년간 운영한 <천안의 원로 주먹 김영태 회장>과 독대하면서 천안복싱 이모저모를 알아보았다.
현재 천안복싱협회 전무를 겸직하고 있는 김연집 관장이 운영하는 UP 체육관에서 복싱을 수련하고 있는 김영태 회장은 1960년 천안태생이다. 대전 복싱협회 양길모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김 회장은 서두에 김 관장은 천안에서 22년째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천안복싱의 안방마님 역활을 하는 살림꾼 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관원들 미트를 빠짐없이 대주면서 매우 성실하게 지도하는 관장이라고 첨부했다. 김연집 관장의 충남체고 후배이자 국가대표 출신의 최양선은 차세대 천안 아산복싱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젊은 지도자라고 언급했다. 김연집 최양선 관장은 모두 충남체고 출신이다.
이들을 지도한 스승이 김왕순 현 대전체육회 차장이다. 김왕순 차장은 1993년 7월 충남체고에 지도자로 입성 김연집 최양선을 비롯 김태규 박권영 박기표 김유신 김용찬 백종섭등 명선수를 연달아 배출 3년간 20개의 전국체전 메달을 창출한 명장이다. 돋보기로 빛을 모으면 강력한 에너지가 발생 불이 만들어지듯이 김왕순 차장도 그와 같은 몰입(沒入) 과정을 통해 우수선수들이 배출됨을 실증한 지도자다. 그런 흔들임 없는 철학을 발판으로 1997년 대전 동산중에서 지휘봉을 잡은 김왕순은 8년 동안 소년체전에서 12개의 금메달을 획득 국내 최다(소년체전) 금메달 획득한 기록 보유자다. 물도 바위와 절벽을 만나야 폭포가 되고 석양도 구름을 만나야 붉은 노을이 펼쳐지듯이 선수는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한다.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 도 인생 성공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한편 김영태 회장은 이번 대회를 주최한 천안시 복싱협회 임성태 회장은 예의 바르고 겸손한 회장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번 대회에 30명의 대규모의 선수단을 출전시킬 정도로 체육관 운영을 탄력적으로 잘 운영하는 협회장이라고 평했다. 1972년 충남 부여태생의 임성태(평택 청담고) 회장은 1989년 9월 전국 회장배 선수권 플라이급 결승에서 이해준(순천 금당고)에 판정패 은메달을 획득한 엘리트 복서다. 1991년 1월 88 프로모션 소속으로 프로 대뷔전을 펼친 임성태는 2차전부터는 필자가 그의 사범 역활을 하면서 2년간 지도하였다. 그 당시 필자는 최요삼 지인진 임성태 3명의 유망주 복서의 트레이닝를 전담했었다. 3명의 복서중 최요삼 지인진 의 1년 선배 임성태는 이들에 비해 복싱 감각이 단연 발군(拔群)이었다. 임성태 복싱은 펀치력 부족이 다소 아쉬웠지만 스피드 센스 스킬 스태미너 등 복싱의 4S를 완벽하게 보유한 스마트한 복서였다.
임성태 회장은 1999년 4월 5일 멜초 가르시아 전을 끝으로 27세에 링을 떠날 때 21전 19승(3KO) 2무를 기록 WBA 플라이급 4위에 랭크 된 복서였다. 참고로 한국 프로복싱사상 20전을 넘긴 세계 랭커 중 무패로 은퇴한 복서는 임성태와 권철 단 두명이다. 김영태 회장은 SK 에코 플랜트 지진형에 대해 근래에 보기드문 의협심(義俠心) 강한 정의로운 후배라고 말하면서 그가 스승인 최한기 관장에게 보여준 제자 된 도리를 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 모든 복싱인 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모범(模範) 사례라고 밝혔다. 1989년 지진형은 대천고 재학시절 폭팔적인 파괴력을 주무기로 전용호 김동철 박상주와 연합전선을 펼치며 대천고 종합우승의 주력 멤버로 활약 한국체대행을 예약한 슬러거였다. 그때 대천고 복싱부를 전담한 스승이 바로 최한기 충의대 감독이었다. 김영태 회장은 요즘 세태에서 학교 혹은 체육관을 벗어나면 사제지간의 연이 끊어지는게 사회적인 통념(通念)이다. 그러나 지부장은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뛰어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심을 잃지 않고 스승(최한기)을 공경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의인 중에 의인이 바로 지진형 부장이라고 역설하였다.
30년에 걸쳐 천안에 위치한 소년원 교도소인 <충의대> 감독을 역임한 최한기 감독과 경기중 밖에 나가 필자와 담화를 나누었다. 1957년 천안태생의 최 감독은 이제 윤구 형 (동아체육관 김윤구 사범)과 준석(황준석)이도 우리 곁을 떠나면서 허탈한 심정이라고 회상하면서 이젠 나도 조만간 아들에게 체육관을 물러주고 야인(野人)으로 돌아갈 것이라 전했다. 최한기 감독의 2년 선배 김윤구 관장은 1955년 청도 출신으로 80년대 전후하여 동아체육관 트레이너로 활약하면서 김현치 관장 휘하에서 30년을 근무하면서 유명우 박종팔 유병래 김환진 오민근 서성인 황준석 최재원 김득구 이상봉등 수많은 명 복서들을 배출한 지도자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19일 경기도 군포시 남천병원에서 위암 투병 끝에 향년 69세로 타계했다. 최한기 감독은 1979년 7월 김득구와 일전을 펼칠 때 김득구 트레이너 김윤구 사범과 운명처럼 만났다가 숙명처럼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그의 제자 황준석도 지난 6월 29일 64세를 일기로 하늘에 별이 되었다. 이러한 침울한 분위기에 편승한 올해 68세인 최한기 감독도 복싱 인생에 마침표를 찍고 체육관 생활을 정리 할 뜻을 굳힌 듯 보였다. 잔디밭에 앉아계시는 초연한 모습의 최한기 감독을 지켜보면서 그분의 심정을 노래하는 듯한 학창 시절 교과서에 실린 원천석의 시한수가 떠오른다. 흥망(興亡)이 유수 하니 만월대도 주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쳐시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논객이 눈물겨워 하노라. 이 시조는 고려 유신 원천석이 고려가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진 애닲은 심정과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한 내용이다.
이 시 내용처럼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한평생 복싱계에 몸담은 최한기 감독도 물위에 뜬 것은 아무리 큰 배라 할지라도 언젠가 뒤집어 질때가 있고 천리를 달리는 적토마라 할지라도 언젠가 멈출 때가 있다는 고사처럼 이제 최한기 감독도 종착역(終着驛)에 시나브로 다가 셨다. 그리고 필자도 그분의 전철을 밟으며 예정된 시간표대로 머지않아 떠날 것이다. 중국 속담에 장강(長江)의 앞 물은 뒷물에 밀려간다는 말처럼 우리 인생도 순리대로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이날 지진형 S K 부장과 필자는 상호 간에 바쁜 스케줄로 인해 2시간 후 체육관을 벗어나 아쉬움을 뒤로하고 곧바로 상경하였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차고 소중한 여정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천안복싱 협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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