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섭의 스포츠 칼럼] 한국 체육인회 제19대 진수학 회장과 체육인들
25.07.15
1
본문
[시사의창=조영섭 기자] 지난 6월20일 대한체육회가 위치한 송파구 모처에서 (사) 한국 체육인회 오찬 모임이 있었다. 한국 체육인회 편집위원으로 위촉된 필자는 88 서울 올림픽 레슬링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명우 사무총장의 연락을 받고 이동포 유원대 복싱 감독과 함께 목적지로 향했다.
이날 귀한 자리를 제공한 분은 한국 체육인회 제19대 진수학 회장이다. 한국 체육인회는 지난 6월1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파크텔 대한체육회 회의실에서 만장일치로 진수학 부회장을 새 회장으로 추대했다. 한국 체육인회는 체육계 원로들의 친목 단체로 1969년 신설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단체다. 현재 이 단체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붕대 투혼의 한명우 사무총장을 필두로 유도 영웅 하형주 몬주익 마라톤 영웅 황영조등 약 50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1942년 경북 고령 태생의 진수학 회장은 배재고 경희대학을 거치면서 육상 400m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한 체육인이다. 특히 1964년 11월 제45회 전국체육대회에 서울 대표로 출전 52초 3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현재 무역업체 써니 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는 진 회장은 1978년 대한육상연맹 전무 1983년부터 3년간 육상연맹 부회장을 엮임했다.
허창봉 사무국장(중앙) 하형주 이사장(좌측)
이런 전력을 보유한 진수학 회장을 현장에서 허창봉 체육인회 사무국장의 안내로 필자는 유도계 살아있는 전설 조재기 전(前) 대한체육진흥공단 이사장과 함께 인사를 드렸다. 올 83세의 진수학 회장을 처음 보는 순간 올해 93세의 최강 동안 이길려 과천대 총장처럼 연세에 비해 상당히 젊게 보였다. 1950년 하동 출신의 조재기 이사장은 1976년 7월 몬트리올 올림픽 LH. 급에 출전 메달 일보 직전에서 안타깝게 패했다. 그러나 절치부심한 조재기는 수도승처럼 삭발하고 무제한급으로 올려 출전 불굴의 투지를 발휘 천금 같은 동메달을 획득한 주인공이다.
한편 진수학 회장은 지난 6월 회장 취임식에서 국위를 선양한 체육인들의 복지향상과 불우체육인들의 지원 사업 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었다. 오늘 참석한 수많은 체육인 중에 가장 반가운 분이 참석했다. 주인공은 이동포 유원대 복싱 감독의 스승이자 1945년 경기도 연천태생의 전(前) KBC 사무총장을 역임한 조민 한국화장품 관장이었다. 1967년부터 10년간 현역 생활하면서 조영철 이춘산 임병모 김광선 조경인 조현복등 역대급 복서들과 일합을 겨루면서 44전 26승(19KO)8무 10패를 기록한 백전노장이다. 그런 스펙을 보유한 옛 스승인 80세의 조민 관장을 예절 바른 반듯한 모습으로 대하는 이동포 유원대 감독을 지켜보면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조민 KBC 사무총장 (왼쪽)이동포관장
1967년 경북 안동 출신의 이동포 유원대 감독은 지난 전국대회에서 2차례 종합우승과 함께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은 지도자다. 또한 2002년 WBC J 플라이급 타이틀을 상실한 최요삼이 고토 회복을 위해 2006년 한국화장품 체육관을 찾았을 때 그의 전담 트레이너였다. 2007년 12월 25일 최요삼의 WBO 인터콘티넨탈 타이틀 1차방어전에서 최요삼의 마지막 경기 모습을 조민 관장과 함께 현장에서 지켜본 역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동포 유원대 감독(왼쪽) 고(故) 최요삼
오찬 모임에서 낯익은 반가운 얼굴 세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총잡이 출신의 박종길 전 태릉 선수촌장. 최관용 정현택 한국체대 교수가 주인공이다. 1945년 5월 익산태생의 박종길은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부터 사격 사상 최초로 3회 연속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다. 은퇴 후 1992년부터 국가대표 사격 감독을 거쳐 2011년 11월 태릉 선수촌장 2013년 3월 문화 체육 관광부 차관에 순차적으로 올랐다. 박종길 선수촌장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 13개 은 8개 동 7개를 일궈내면서 서울 올림픽 (종합 4위) 이후 최고의 성적을 창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관용 정현택 교수 박종길 촌장 정권철 박사(우측)
박종길 촌장의 복싱 사랑의 숨은 비화가 생각난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할 대표선수단이 공항에서 출국을 앞두고 있을 때 박 촌장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공항에서 런던올림픽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 자리에서 박 촌장은 복싱의 신종훈을 박근혜 대표에게 소개하면서 이 선수도 대통령과 동향인 경북 구미태생의 복싱 국가대표입니다. 그리고 2011년 세계 선수권(아제르 바이잔) 2등을 한 선수로 이번 올림픽 강력한 금메달 후보라고 소개 신종훈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 같은 내용은 필자가 수년 전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한 박종길 촌장을 만나 취재한 내용이다. 한명우 사무총장은 선수촌에 15년간 선수촌 생활을 회상하면서 수많은 체육인 중 박종길 촌장은 가장 존경하는 체육인 중 한 분이었다고 밝혔다.
최관용 한국체대 경기 지도학과 교수는 1997년 필자가 신귀항 선생의 요청으로 서울체고에 입성할 때 유도 감독으로 계셨던 분이다. 이분은 1988년 서울 체중과 서울체고 교사 재직시절 자신이 직접 발탁 조련 국가대표로 성장시킨 김미정 조민선 정선용 현숙희 윤동식을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시켜 밤하늘에 별처럼 수많은 금메달(20개)을 탄생시킨 유도계의 전설이다.
특히 모든 운동의 기초이자 근간(根幹)을 이루는 육상선수 출신의 김미정(용인대)을 서울체고 2학년때 유도로 전환 시켜 1992년 바로 셀로나 올림픽에서 사상 첫 여자유도 올림픽 금메달을 탄생시키면서 한국 유도의 지평선을 열었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초등학교 시절 육상 단거리 출신 조민선(한국체대)을 유도선수로 발탁 그녀가 여자 유도 사상 최초로 세계 선수권대회(93.95년) 2연패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 최초로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을 달성하는 금자탑을 세운 주역으로 탄생시켰다.
더불어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 현숙희. 정선용(용인대)과 47연승을 대 기록한 작성한 비운의 유도 스타 윤동식(한양대)도 모두 그의 작품들이다. 그는 88서울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시작으로 5년간 대표팀 스탶으로 활약 유도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역사적 인물이다. 지도자에겐 금강석(金剛石) 같은 선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감정할 능력이 없으면 그저 고철(古鐵)에 불과하다.
한명우 사무총장(왼쪽) 조재기 이사장 진수학 회장
매의 눈으로 선수를 엄선 세계 정상권에 올려놓은 최관용 교수는 현재 한국체육학회 회장을 겸직하면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체육계의 명심보감>으로 불리는 88 서울 올림픽 금메달 한명우 체육인회 사무총장도 유원건설 복싱체육관 김치복 관장의 지도를 받다가 레슬링으로 재전환 88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걷어 올린 박학다식한 인물이다. 필자가 틈틈이 송파구 에 위치한 대한체육회 한국 체육인회 사무실을 방문하면 허창봉 사무국장과 한명우 사무총장 두 분이 필자를 가족처럼 따스하게 대해주신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勃發)한 해인 1941년 홍천태생의 허창봉 한국 체육인회 사무국장은 한국 스포츠계 살아있는 역사이다.
허창봉 국장은 1970년 대한체육회에 경기과장으로 입사 훈련과장을 거치면서 한세대(30년)에 걸쳐 벌어진 올림픽 세계 선수권 등 무수한 대회에 출전한 전 종목 선수들이 작성한 방대한 기록을 빠짐없이 서술(敍述)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런 그를 체육인들 사이에 <체육계의 사마천>이라 불리고 있는 인물이 바로 허창봉 국장이다.
허 국장은 1956년 최초의 여자배구 세계대회(체코) 준우승 주역 박신자. 1966년 미국 톨레토 세계 레슬링 선수권 최초 우승자 장창선. 1973년 구기종목 사상 최초의 세계대회 금메달 주역 탁구에 이에리사. 1981년 최초의 세계 유도선수권대회 우승자 박종학(청주대) 등 모든 종목의 인물 역사와 기록을 세밀하게 남기신 한국 스포츠계 살아있는 전설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헨드볼 경기에서 한국대표팀이 남자 구기종목 사상 첫 은메달을 따내며 기념비적인 업적을 창출한 유재충 전 대표팀 감독도 참석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유재충 체육인회 부회장(왼쪽)과 제자 윤태일
1948년 익산태생의 유 감독은 헨드볼계에서 축구의 박종환 감독으로 불린 지도자다. 그는 일반인들 상상을 초월한 혹독한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려 LA 올림픽 때 11위의 초라한 성적을 낸 약체 남자 헨드볼 대표팀을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에서 동구권 강호 동독 체코 헝가리를 연파하면서 변방의 위치한 한국 헨드볼 대표팀을 일약 결승전에 진출시켰다. 비록 우승 문턱에서 패해 비록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박종환 축구 감독의 83년 세계 청소년대회 4강 신화에 비견되는 새역사를 창조한 주인공이다. 끝으로 진수학 한국 체육인회 회장을 구심점으로 체육인들이 대동단결 한국 체육이 한 단계 도약한성숙한 모습으로 재탄생하길 기대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박종환감독 #조영섭의스포츠칼럼 #진수학회장 #박신자 #장창선 #레슬링 #권투 #박종길태릉선수촌
이날 귀한 자리를 제공한 분은 한국 체육인회 제19대 진수학 회장이다. 한국 체육인회는 지난 6월1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파크텔 대한체육회 회의실에서 만장일치로 진수학 부회장을 새 회장으로 추대했다. 한국 체육인회는 체육계 원로들의 친목 단체로 1969년 신설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단체다. 현재 이 단체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붕대 투혼의 한명우 사무총장을 필두로 유도 영웅 하형주 몬주익 마라톤 영웅 황영조등 약 50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1942년 경북 고령 태생의 진수학 회장은 배재고 경희대학을 거치면서 육상 400m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한 체육인이다. 특히 1964년 11월 제45회 전국체육대회에 서울 대표로 출전 52초 3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현재 무역업체 써니 코리아 대표를 맡고 있는 진 회장은 1978년 대한육상연맹 전무 1983년부터 3년간 육상연맹 부회장을 엮임했다.
허창봉 사무국장(중앙) 하형주 이사장(좌측)
이런 전력을 보유한 진수학 회장을 현장에서 허창봉 체육인회 사무국장의 안내로 필자는 유도계 살아있는 전설 조재기 전(前) 대한체육진흥공단 이사장과 함께 인사를 드렸다. 올 83세의 진수학 회장을 처음 보는 순간 올해 93세의 최강 동안 이길려 과천대 총장처럼 연세에 비해 상당히 젊게 보였다. 1950년 하동 출신의 조재기 이사장은 1976년 7월 몬트리올 올림픽 LH. 급에 출전 메달 일보 직전에서 안타깝게 패했다. 그러나 절치부심한 조재기는 수도승처럼 삭발하고 무제한급으로 올려 출전 불굴의 투지를 발휘 천금 같은 동메달을 획득한 주인공이다.
한편 진수학 회장은 지난 6월 회장 취임식에서 국위를 선양한 체육인들의 복지향상과 불우체육인들의 지원 사업 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었다. 오늘 참석한 수많은 체육인 중에 가장 반가운 분이 참석했다. 주인공은 이동포 유원대 복싱 감독의 스승이자 1945년 경기도 연천태생의 전(前) KBC 사무총장을 역임한 조민 한국화장품 관장이었다. 1967년부터 10년간 현역 생활하면서 조영철 이춘산 임병모 김광선 조경인 조현복등 역대급 복서들과 일합을 겨루면서 44전 26승(19KO)8무 10패를 기록한 백전노장이다. 그런 스펙을 보유한 옛 스승인 80세의 조민 관장을 예절 바른 반듯한 모습으로 대하는 이동포 유원대 감독을 지켜보면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조민 KBC 사무총장 (왼쪽)이동포관장
1967년 경북 안동 출신의 이동포 유원대 감독은 지난 전국대회에서 2차례 종합우승과 함께 최우수 지도자상을 받은 지도자다. 또한 2002년 WBC J 플라이급 타이틀을 상실한 최요삼이 고토 회복을 위해 2006년 한국화장품 체육관을 찾았을 때 그의 전담 트레이너였다. 2007년 12월 25일 최요삼의 WBO 인터콘티넨탈 타이틀 1차방어전에서 최요삼의 마지막 경기 모습을 조민 관장과 함께 현장에서 지켜본 역사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동포 유원대 감독(왼쪽) 고(故) 최요삼
오찬 모임에서 낯익은 반가운 얼굴 세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총잡이 출신의 박종길 전 태릉 선수촌장. 최관용 정현택 한국체대 교수가 주인공이다. 1945년 5월 익산태생의 박종길은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부터 사격 사상 최초로 3회 연속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다. 은퇴 후 1992년부터 국가대표 사격 감독을 거쳐 2011년 11월 태릉 선수촌장 2013년 3월 문화 체육 관광부 차관에 순차적으로 올랐다. 박종길 선수촌장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 13개 은 8개 동 7개를 일궈내면서 서울 올림픽 (종합 4위) 이후 최고의 성적을 창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관용 정현택 교수 박종길 촌장 정권철 박사(우측)
박종길 촌장의 복싱 사랑의 숨은 비화가 생각난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할 대표선수단이 공항에서 출국을 앞두고 있을 때 박 촌장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공항에서 런던올림픽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 자리에서 박 촌장은 복싱의 신종훈을 박근혜 대표에게 소개하면서 이 선수도 대통령과 동향인 경북 구미태생의 복싱 국가대표입니다. 그리고 2011년 세계 선수권(아제르 바이잔) 2등을 한 선수로 이번 올림픽 강력한 금메달 후보라고 소개 신종훈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 같은 내용은 필자가 수년 전 필자의 체육관을 방문한 박종길 촌장을 만나 취재한 내용이다. 한명우 사무총장은 선수촌에 15년간 선수촌 생활을 회상하면서 수많은 체육인 중 박종길 촌장은 가장 존경하는 체육인 중 한 분이었다고 밝혔다.
최관용 한국체대 경기 지도학과 교수는 1997년 필자가 신귀항 선생의 요청으로 서울체고에 입성할 때 유도 감독으로 계셨던 분이다. 이분은 1988년 서울 체중과 서울체고 교사 재직시절 자신이 직접 발탁 조련 국가대표로 성장시킨 김미정 조민선 정선용 현숙희 윤동식을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시켜 밤하늘에 별처럼 수많은 금메달(20개)을 탄생시킨 유도계의 전설이다.
특히 모든 운동의 기초이자 근간(根幹)을 이루는 육상선수 출신의 김미정(용인대)을 서울체고 2학년때 유도로 전환 시켜 1992년 바로 셀로나 올림픽에서 사상 첫 여자유도 올림픽 금메달을 탄생시키면서 한국 유도의 지평선을 열었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초등학교 시절 육상 단거리 출신 조민선(한국체대)을 유도선수로 발탁 그녀가 여자 유도 사상 최초로 세계 선수권대회(93.95년) 2연패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룩하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획득 최초로 올림픽과 세계 선수권을 달성하는 금자탑을 세운 주역으로 탄생시켰다.
더불어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은메달 현숙희. 정선용(용인대)과 47연승을 대 기록한 작성한 비운의 유도 스타 윤동식(한양대)도 모두 그의 작품들이다. 그는 88서울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시작으로 5년간 대표팀 스탶으로 활약 유도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역사적 인물이다. 지도자에겐 금강석(金剛石) 같은 선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감정할 능력이 없으면 그저 고철(古鐵)에 불과하다.
한명우 사무총장(왼쪽) 조재기 이사장 진수학 회장
매의 눈으로 선수를 엄선 세계 정상권에 올려놓은 최관용 교수는 현재 한국체육학회 회장을 겸직하면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체육계의 명심보감>으로 불리는 88 서울 올림픽 금메달 한명우 체육인회 사무총장도 유원건설 복싱체육관 김치복 관장의 지도를 받다가 레슬링으로 재전환 88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걷어 올린 박학다식한 인물이다. 필자가 틈틈이 송파구 에 위치한 대한체육회 한국 체육인회 사무실을 방문하면 허창봉 사무국장과 한명우 사무총장 두 분이 필자를 가족처럼 따스하게 대해주신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勃發)한 해인 1941년 홍천태생의 허창봉 한국 체육인회 사무국장은 한국 스포츠계 살아있는 역사이다.
허창봉 국장은 1970년 대한체육회에 경기과장으로 입사 훈련과장을 거치면서 한세대(30년)에 걸쳐 벌어진 올림픽 세계 선수권 등 무수한 대회에 출전한 전 종목 선수들이 작성한 방대한 기록을 빠짐없이 서술(敍述)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런 그를 체육인들 사이에 <체육계의 사마천>이라 불리고 있는 인물이 바로 허창봉 국장이다.
허 국장은 1956년 최초의 여자배구 세계대회(체코) 준우승 주역 박신자. 1966년 미국 톨레토 세계 레슬링 선수권 최초 우승자 장창선. 1973년 구기종목 사상 최초의 세계대회 금메달 주역 탁구에 이에리사. 1981년 최초의 세계 유도선수권대회 우승자 박종학(청주대) 등 모든 종목의 인물 역사와 기록을 세밀하게 남기신 한국 스포츠계 살아있는 전설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남자 헨드볼 경기에서 한국대표팀이 남자 구기종목 사상 첫 은메달을 따내며 기념비적인 업적을 창출한 유재충 전 대표팀 감독도 참석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유재충 체육인회 부회장(왼쪽)과 제자 윤태일
1948년 익산태생의 유 감독은 헨드볼계에서 축구의 박종환 감독으로 불린 지도자다. 그는 일반인들 상상을 초월한 혹독한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려 LA 올림픽 때 11위의 초라한 성적을 낸 약체 남자 헨드볼 대표팀을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에서 동구권 강호 동독 체코 헝가리를 연파하면서 변방의 위치한 한국 헨드볼 대표팀을 일약 결승전에 진출시켰다. 비록 우승 문턱에서 패해 비록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박종환 축구 감독의 83년 세계 청소년대회 4강 신화에 비견되는 새역사를 창조한 주인공이다. 끝으로 진수학 한국 체육인회 회장을 구심점으로 체육인들이 대동단결 한국 체육이 한 단계 도약한성숙한 모습으로 재탄생하길 기대한다.
조영섭 기자 6464ko@naver.com
창미디어그룹 시사의창
#박종환감독 #조영섭의스포츠칼럼 #진수학회장 #박신자 #장창선 #레슬링 #권투 #박종길태릉선수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