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천부적 자질 보유한 복싱계 숨은 '고수' 동양챔피언 유종훈

25.06.13 19

본문

지난 주말 부산에 업무차 들렀다가 일과를 마치고 부산시 남구에서 아세아복싱체육관을 운영하는 전 동양 J. 웰터급 챔피언 유종훈 관장을 만났다.

1968년 경북 안동태생의 유종훈은 유년(幼年) 시절 부산에 입성, 1984년 부산 아세아 체육관 이종언 관장 문하에서 복싱을 수학한  후배 복서다. 부산 아세아 체육관은 부산 최초의 세계 챔피언 김상현을 배출한 명문 체육관이었다.

이곳에서 훈련하면서 천부적으로 우월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부산에서 개최된 각종 선발전(밴텀급)에 출전해 25전 17승 (15KO) 8패를 기록한다.

이종언 관장은 천부적으로 묵직한 한방을 보유한 유종훈이 아마복싱보다는 프로에 적합한 스타일임을 감지하였고 이에 유종훈은 1987년 6월 박용민을 상대로 4회 KO승을 거두면서 프로로 전향한다.




그리고 내리 3연속 KO승을 거둔다. 폭발적인 좌우 연타에 상대는 총 맞은 노루처럼 고꾸라진 것이다. 8승(6KO) 2패를 기록한 유종훈은 1990년 9월 KBC 한국 J.웰터급 타이틀에 도전한다. 챔피언은 태양체육관 송성운이었다.

1967년 3월 고흥군 두원면 태생의 송성운은 스승인 전 WBA J.미들급 챔피언 유제두 관장과 같은 고장 출신이었다. 1986년 6월 유제두 관장의 지도를 받으며 프로에 데뷔한 송성운은 국가대표 상비군 오봉균(동국대)을 필두로 동양 챔피언 박경현, 김종길, 국내 챔피언 김권식, 우동구, 김찬수, 최강을 차례로 제압하면서 25전 21승(6KO) 1무 4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송성운은 유종훈이 2연패(1KO) 당한 바 있는 박경현을 1989년 6월 8회전 경기에서 4회 KO로 잡은 전력이 있는 한 단계 레벨(Level)이 높은 복서였다. 이대결에서 언더독(Underdog)에 위치한 10전의 유종훈은 눈에 독살스런 살기(殺氣)를 품고 대전에 임했다.

 1회전이 시작되자 유종훈은 화염 방사기처럼 우월한 화력을 뿜어내면서 탑독(Top dog)의 송성운을 향해 맹폭을 가한다.

챔피언 송성운도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으나 파괴력에서 우위를 선점한 도전자 유종훈이 접전 끝에 판정승을 거두면서 국내 정상에 오른다. 예상치 못한 패배로 심한 허탈감에 빠진 제2의 유제두로 주목을 받던 송성운은 이 경기를 끝으로 23살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다.




유종훈은 1992년 1월 충남 금산에서 벌어진 3차방어전에서 아마추어 전국 선수권자인 박경현에게 판정패를 당하면서 타이틀을 잃고 무관으로 전락한다. 이 패배를 전환점으로 유종훈은 부산 국일 체육관 김운학 관장의 지도를 받으며 훈련을 재개한다.

1945년 경남 거창태생의 김운학 관장은 부산 광성공고 재학시절 전국 무대를 (밴텀급) 평정한 복서 출신이다. 이를 발판으로 1963년 경희대학교에 진학, 유인구, 김성은, 양행석, 이문용과 하모니를 이루면서 경희대학교를 정상에 올려놓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김운학은 은퇴 후 부산 아세아 체육관에서 전(前) WBC 슈퍼라이트급 챔피언 김상현의 트레이너로 명성을 한올 한올 쌓아 올렸다.

이런 화려한 전력을 보유한 김운학 관장과 호흡을 맞추면서 3연승(2KO)을 기록한 유종훈은 1993년 9월 김종길과 10회전 라이벌전을 벌인다. 1965년 부안출생의 김종길은 ‘인간 방파제’로 불리면서 MBC 신인왕전 최우수복서 이철형과 동양 챔피언 김정범을 꺾은 실력파였다.

이 대결에서 유종훈은 치열한 난타전을 벌이면서 10회 판정승을 거두고 건재를 과시한다. 김종길은 훗날 유종훈은 펀치력과 기교(테크닉) 그리고 동체시력이 좋은 복서라고 함축해 표현했다.

 1993년 12월 유종훈은 윤석현과 KBC J. 웰터급 타이틀 결정전을 벌인다. 1972년 충남 예산 출신의 윤석현은 동양 챔피언 박정오를 필두로 세계 군인선수권 은메달 송국렬 그리고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인 한충, 김연집, 윤인영 트리오를 차례로 제압한 근성의 복서였다.


투 타임 동양챔피언 윤석현.

특히 1997년 5월 필리핀의 알레그레아를 레프트훅 일발로 3회 KO 시키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알레그레아는 30전승(25KO)을 기록한 80년 MBC 신인왕 최우수복서 출신의 세계랭커 이상호를 3회 KO로 꺾으며 돌풍을 일으킨 복서였다.

언젠가 알레그레아에게 필자는 한국 복서 4명(이상호, 윤석현, 안경덕, 박정오)과 격돌했는데 그 중 최고의 복서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란 필자의 질문에 일 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윤석현이라고 대답했다.




이 대결에서 유종훈은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유한 윤석현을 상대로 주도권을 잡고 압박 10회 판정승을 거두고 국내 정상에 오른다. 경기에 패한 윤석현은 훗날 육필수기(肉筆手記)에서 “그는 제2의 김상현이라 불릴 만큼 높은 기량을 보유한 복서였다.”고 회상했다.

또한 시대를 잘 만났다면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을 만큼 흠 잡을 데가 없는 복서가 바로 유종훈이었다고 적었다. 이어서 “그는 주먹도 묵직하고 매끈한 근육질 몸매에 눈매도 날카로운 복서였다.

한마디로 내가 38전을 싸운 복서 중 최고의 복서가 바로 유종훈”이라고 격찬하였다. 윤석현을 꺾고 타이틀을 차지한 유종훈은 3차 방어에 성공하면서 일약 다크호스(Dark horse) 로 떠오른다.

그리고 1995년 6월 동양 J. 웰터급 타이틀 결정전을 치르게 되는데 상대는 종종 파킹. 88전을 싸운 필리핀의 노련한 베테랑이었다. 이 대결에서 유종훈은 군말 없는 12회 판정승을 거둔다. 그 후 유종훈은 2년 1개월에 걸쳐 동양 J.웰터급 6차 방어에 성공한다.

그리고 마침내 1999년 2월, 3연승의 김종길과 운명의 7차 방어전을 펼치게 된다. 그러나 유종훈은 언제부터인가 밤만 되면 부산 시내를 하이에나처럼 배회(徘徊)하면서 스트리트 파이터(Street fighter) 기질을 드러내며 경찰서를 들락날락한다.

그의 스승 김운학 관장이 경찰서를 찾아와 전도유망(前途有望)한 복서라고 말하면서 선처를 부탁해 훈방(訓放) 조치 되기를 수차례.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경기를 불과 열흘 앞두고서야 훈련을 시작한다. 불어난 체중은 이뇨제(利尿劑)를 과다 복용하면서까지 간신히 조절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컨디션 난조를 보인 유종훈은 예상대로 4회 KO패를 당한다.

이어 2개월 보름 뒤인 그해 4월 25일에는 J.미들급 강타자 박순배를 상대로 다시 링에 오른다. 1999년 MBC 신인왕전에서 4연속 KO승을 거두면서 KO왕 상을 수상한 박순배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지만 노련한 유종훈은 파상공격을 퍼부으며 6회 1분 40초 만에 모래성처럼 그를 허물어뜨렸다.

 1999년 7월 이대산을 상대로 미들급 한계체중에 1Kg 상회한 73.5Kg으로 링에 올라 판정승을 거둔 유종훈은 32전 28승(12KO) 4패의 전적을 호랑이 가죽처럼 남기고 31세에 링을 떠난다.

그는 32전을 싸우면서 가장 강한 상대로 2연패를 당한 송탄체육관 박경현을 꼽았다. 그러면서 “언제 서울에 올라가면 형님(필자)께서 박경현 챔프와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말했다. 한편 세계 챔피언 김상현을 탄생시킨 명 트레이너 김운학 관장은 “유종훈은 폭발적인 잠재력을 보유한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다.




그러나 통산 49전 43승(25KO) 2무 4패를 기록한 김상현 챔프에 비해 성실성과 노력, 인내력이 부족했다”고 전했다. 90년대 J.웰터급에서 터줏대감으로 군림한 유종훈. 그는 자신이 바라던 만큼 만개(滿開)하지 못한 지난날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인생 3막을 펼쳐나가고 있다.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얼마 전 제1회 유종훈배 전국 생활 체육대회를 오픈하는 등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유종훈 관장은 현역 시절 절실하게 한 가지를 깨달았다고 밝혔다. 끈기 있고 성실하게 훈련하는 복서는 평범한 복서에서 재능이 특출한 비범(非凡)한 복서로 재탄생한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는 비범한 복서는 결국 평범(平凡)한 복서로 전락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순(耳順)의 문턱에서 자신의 롤 모델인 김상현 같은 복서를 탄생시키기 위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그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