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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톱가수 이숙과 복싱 국제심판 박동안 회장의 '러브 스토리'

25.04.2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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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4월 필자는 서대문에 위치한 풍산체육관 개관식에 참석해 이거성 대표에게 귀한 분을 소개받았다.

주인공은 국내 심판 중 유일무이하게 프로복싱 WBA, WBC, WBO, IBF 등 4대 기구 국제심판을 역임한 박동안 회장의 아내이자 70년대 톱가수 이숙님이다.

이거성 박 동안 두 분은 절친이다. 특히 1998년 8월 제리 페날로사가 보유한 WBC 슈퍼 플라이급 타이틀전에 이거성 사단의 조인주가 도전해 정상에 오를 때 박동안 회장이 소리 없는 조력자로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시멘트처럼 더욱 견고해졌다. 박동안 회장의 아내인 이숙님은 1970년 미8군 쇼 무대에서 1백여곡의 팝송 레퍼토리를 부르다가 1974년 길옥윤이 작곡한 <눈이 내리네>란 곡으로 가요계에 샛별처럼 나타난 가수다.




그해 TBC 신인 가수상을 차지한 이숙은 강렬하고 우렁찬 가창력과 허스키한 음색으로 제2의 패티김으로 불렸다.

이후 <우정>,  <슬픔이여 안녕>,  <벌써 나를 잊으셨나요>,  <슬픈 눈동자의 소녀> 등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중견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1979년 은퇴와 함께 여동생의 초청으로 샌프란시스코와 시애틀로 가서 10년을 보내면서 사업가로 탄탄하게 자리를 잡는다.

이후 귀국하여 친구로 지내던 박동안 회장과 2008년 5월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홍수환 옥희 커플에 이어 복서와 가수 커플 2호로 탄생했다.

이 두 분의 중년 러브 스토리를 연결한 사람이 바로 풍산 프로모션 이거성 대표다. 1951년 익산태생의 이거성 대표는 냉철하면서 근검한 성품이다.

그러면서 자기 관리가 철두철미한 배울점이 많은 복싱인이다. 이에 반해 박동안 회장은 호탕하고 후배들에게 나눔과 베품을 실행하는 유연한 성품의 복싱인이다.




1949년 전남 해남 출신의 박동안 회장은 신도체육관 조순현 관장 문하에서 복싱을 수학했다. 1969년 3월 제5회 서울 신인 라이트급 결승에서 김정춘(한체대)에 판정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해 일본(요코하마)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주니어선발전에 출전해 파죽의 4연승(2KO)을 거두고 결승에 진출한다.

이 대결에서 남산공전 송대섭과 경기를 펼쳐 회심의 라이트 일격으로 다운을 빼앗는 등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아쉽게도 3ㅡ2로 판정패를 당한다.

그리고 1969년 10월 박동안은 프로에 전향해, 1976년 9월 강원도 춘천에서 한국 주니어미들급 타이틀을 걸고 6전 5승 1무를 기록한 챔피언 주호와 일전을 벌인다.

이 대결은 아마추어 시절 아시아선수권(웰터급)을 제패한 국가대표 출신 주호의 우세가 점쳐진 경기였다.

그러나 이 대결에서 박동안은 예상을 깨고 배수진을 친 과감한 파이팅으로 시종일관 챔피언 주호를 압도하는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그러나 결과는 무승부.

이에 허탈함이 수직상승한 박 동안은 곧바로 은퇴를 선언한다. 박동안은 1980년 프로복싱 한국권투위원회(KBC)심판으로 데뷔한다.

그는 자신이 선수 생활할 때 겪었던 불공정한 판정의 희생자가 더 이상 없도록 심혈을 기울여 올곧은 판정을 내리는 심판으로 명성을 높힌다.

그리하여 1994년 태국에서 개최된 WBA 플라이급 챔피언 가메즈의 경기에 주심으로 참가했고, 2012년 멕시코 칸쿤에서 개최되는 WBC 50주년 행사에 김장성 심판과 함께 한국을 대표해 참석했다.

또한 2013년 여자 플라이급 타이틀전에도 부심으로 참석한 박동안 회장은 유창하게 구사하는 영어 회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1993년에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할 정도로 만학도인 박동안은 복싱계에 도덕군자로 불릴 정도로 주변에 평판이 좋은 복싱인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력을 보유한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심판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온 횟수가 기록적인 200회를 뛰어넘는다. 박동안 회장은 1997년 3월 청량리에 코리아 복싱체육관을 오픈한다.

그리고 선수양성에 심혈을 기울여 이근식, 채승석, 신동길, 조용인 등 4명의 한국 챔피언을 배출했다.

특히 2001년 12월20일 일본 오사카 부립체육관에서 열린 OPBF 슈퍼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15전 15승(13KO)을 기록한 일본의 가나이 아키히로와 대결에서 박동안 사단의 선두 주자 조용인이 1회 맹폭을 가해 상대를 실신시키면서 KO로 꺾고 정상에 올랐을 때가 복싱계에 몸담으면서 가장 큰 기쁨과 희열을 느낀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가장 안타까운 경기는 2009년 단양에서 벌어진 OPBF 밴텀급 타이틀 결정전에서 채승석이 필리핀의 말콤 투나카오 와 대결에서 2ㅡ1 판정패를 당한 경기라고 밝혔다.




2004년에 벌어진 경기로 핀란드 국제대회 국가대표 출신의 난적 권일과 일진일퇴의 치열한 접전 끝에 10회 판정승을 거두고 국내 밴텀급 챔피언에 등극한 채승석이 이 경기를 발판으로 세계 무대로 도약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홈링임을 감안하면 채승석의 무난한 판정승이 예상된 경기였다. 하지만 한국심판이 필리핀 선수에게 승점을 주는 바람에 채승석은 아쉽게도 은퇴 수순을 밟았다.

그리고 가장 잊을수 없는 경기중 하나가 2002년 11월 이시하라 챔피언과 OPBF 플라이급 타이틀을 앞두고 훈련하던 투 타임 국내 챔피언, 박동안 사단의 최고참 31살 노장 선수 신동길의 딸아이가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하늘의 별이 되는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다.

사랑하는 딸을 가슴에 묻은 충격으로 신동길의 마음은 가수 이숙 님의 <슬픈 눈동자의 소녀>에 나오는 가사 내용처럼 흩날리는 낙엽 따라 멀리멀리 떠나가고 싶은 참담한 심정이었다.


국가대표 출신 신동길.

당시 신동길은 도저히 경기를 뛸 수 없는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박동안 회장의 인간적인 신뢰와 따스함 때문에 신의를 저버릴수 없어 무려 11kg을 감량하고 링에 올라 일전을 치렀다.

 비록 경기에 패해 정상 정복에 실패 했지만 박동안 회장의 선수에 대해 자상한 인간적인 면모를 유추해볼수 있는 장면이다.




필자는 3년 전에 박동안 회장과 같은 전남 해남 출신의 국가대표 복싱선수로 93년 태평양 국제복싱대회(러시아) 최우수복서(MVP) 출신 김민기(한국체대)와 함께 박동안 이숙 부부의 자택인 구리시 갈매동 APT를 방문했다. 그리고 오찬을 함께하며 정담을 나누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현재 미국 콜로라도주 모처에 광활한 4만 평의 대지에 저택을 보유한 박동안 회장 부부는, 망중한(忙中閑)을 이용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인생 3막을 풍요롭게 지내고 있다.

끝으로 정겨운 사람 냄새 풀풀 풍기는 박동안 부부의 가정에 평강이 함께하길 기원하면서 이번 주 스포츠 칼럼을 마무리한다.